새 소파, 낡은 수납장, 그리고 뽀로로 변기

[부모님의 거실] 서로 다른 시간이 겹치는 곳

by 기록가 레이

부모님 댁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조금씩 세련되어졌다.

내가 어릴 적 뛰놀던 낡은 집의 풍경은 사라졌고, 거실 한가운데에는 모던한 패브릭 소재의 새 소파가 놓여 있다. 벽지도 깔끔하고 가전제품도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얼핏 보면 모델하우스처럼 말끔해진 풍경.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낮추거나 구석으로 돌리면, 여지없이 '부모님의 시간'이 툭 튀어나온다.

세련된 새 소파 옆에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보았던 칠 벗겨진 패시브 스피커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최신형 TV 아래 장식장에는 수십 년 된 응급키트와 오래된 인형이 있다.


조부모님과 집을 합치게 되어 이사할 때 "이제 좀 버리시라"고 했던 그 낡은 물건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낯선 새집에 부모님의 '냄새'를 입힌다. 새것의 틈바구니에 박힌 오래된 가구들. 그것은 마치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부모님의 고집 혹은 정체성 같기도 했다.

그런데 주말이 되면, 이 미묘한 균형을 깨뜨리는 제3의 존재들이 난입한다. 바로 나의 아이들이다.



렌티큘러의 왼쪽 시선은 '질서와 생존'이다.

새로 산 소파와 그 사이사이에 낀 오래된 가구들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평온하게 놓여 있다. 새것은 헌것을 받쳐주고, 헌것은 새것에 깊이를 더한다.

하지만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유쾌한 파괴'가 시작된다.

거실에 들어서면 제일 눈에 띄는 한복판에 알록달록한 '뽀로로 어린이 변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머니가 아끼는 TV 장식장 옆, 부엌으로 가는 길목에는 손녀가 펼쳐놓은 핑크색 '주방 놀이 세트'가 바리케이드처럼 쳐져 있다.

새 소파 위에는 로봇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고, 흠집 가득한 나무 탁자 위에는 아이들이 먹다 남긴 우유팩이 놓인다.


[새 가구 - 헌 가구 - 플라스틱 장난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이질적인 사물들이 한 공간에 뒤섞인다.

처음엔 이 난장판이 부모님의 쾌적한 새집을 망치는 것 같아 죄송했다. 급하게 장난감을 치우려는 나를 아버지가 말리셨다.

"그냥 둬라. 소파가 새 거면 뭐 하냐, 앉을 사람이 있어야지. 애들이 와야 집이 꽉 찬다."

그제야 알았다. 부모님이 기꺼이 허락한 이 부조화가 사실은 가장 완벽한 인테리어였음을.


새 가구는 손주들을 편안하게 받쳐주기 위해 존재하고, 오래된 가구는 그 소란스러움을 묵묵히 지켜보는 배경이 되어준다.

나의 작품 속 부모님의 거실은, 흐르는 시간(새것)과 멈춘 시간(헌것), 그리고 자라나는 시간(아이들)이 한데 엉켜 비로소 완성되는 '가족의 역사'다.

뽀로로 변기와 고가구가 나란히 놓인 그 엉뚱한 풍경이, 세상 그 어떤 쇼룸보다 따뜻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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