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1) 만남, 그리고 부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장 4–7절
젊은 날의 선택은 어쩌면 서툴렀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제가 이 길을 택한 것인지, 이끌린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돌아보니, 매일을 견디고 함께 살아낸 그날들 속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조금씩 제게 가르쳐 주고 계셨습니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도처럼 충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예의를 다하고 돌아온 그날, 저는 ‘결혼’이라는 단어를 품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사실 봄에 처음 만났을 땐 싫다고 거절했습니다. 가을에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때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중매해 주신 분의 수고와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좋은 모습으로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양가 어른들은 결혼을 약속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엔 그런 결혼이 흔했으니까요.
“뭐, 별 남자 있겠나…”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편으론 저도 가슴 뛰는 사랑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드라마처럼, 소설처럼— 그런 사랑 말입니다. 짝사랑은 세 번쯤 해 봤습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간질했고, 말도 못 하고 혼자 좋아하다 끝났던 기억들. 저를 좋아해 주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조용히 인연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한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 지금의 제 남편은 건강할 땐 참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말수는 적었지만 늘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끔 엉뚱한 잔소리는 있었지만… 어떤 순간엔 어린아이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대고 싶을 때 따뜻하게 감싸 주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근히 안아 주는 남편의 모습을 조금씩 포기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기대는 대신, 제가 감싸 주고, 제가 받아 주고, 제가 참으며 살아가는 사랑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고백하는 이 시간을 가지다 보니, 마음속에서 이런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이게 사랑이었구나.”
크게 설레지도 않았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장면도 없었지만— 함께 살아내며 조금씩 웃고, 자주 참고, 가끔은 포기하고, 그래도 같이 걷는 그날들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천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택한 길 같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길 위에 주님께서 이끄신 손길이 있었음을 믿습니다.
지금 저는, 감히 여쭤봅니다.
이 삶을, 이 결혼을, 이 사람과의 여정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2) 그날의 재활과 진료실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찾게 되는 진료실입니다.
남편의 현재 증세와 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진료실을 그대로 나오려다가
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교수님, 저…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어요.”
진료차 남편을 모시고 간 익숙한 대학병원,
늘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던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저를 반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제 말에 미소를 머금으신 교수님은 브런치 프로필의 주소를 알려 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교수님께 링크를 드리려면, 전화번호가 필요하긴 한데요…”
교수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번호는 안 돼요. 그냥 보여 주세요.”
저는 브런치 프로필 화면을 열어 “유리는 필명이에요. 처음이라 잘 몰라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은 메모지에 주소를 적으시며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정말 들어오실 건가요?”
“네, 저도 ‘브런치스토리’에 아는 분 있어요. 다음 번에 오실 때도 좋은 소식 하나씩 갖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에 들어가 보니, 이미 ‘구독’이 눌려 있었습니다. 저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참 고마운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분은 13년 전, 남편이 처음 재활의학과로 옮겨 왔을 때 남편의 담당의였습니다. 남편의 퇴원 후 2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분이 다시 진료를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께 진료를 부탁드렸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 남편은 꾸준히 그분께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 이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말을 드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한 응원이었고, 13년 여정의 또 하나의 따뜻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도 그 계기로 쓸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