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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은혜의 손잡이

by 박유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히브리서 4장 12절



ChatGPT Image 2025년 6월 21일 오후 01_24_30 복사.png 조용히 걸어가는 길, 그 길 위에서 주님과 눈을 마주합니다. 주님은 나보다 조금 큰 걸음으로, 그러나 나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십니다.



하나님

새벽 이른시간, 말씀을 묵상하며,

예전에도 몇 번이나 읽었던 말씀이지만,

그때는 지나치듯 읽고 말았던 구절들이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자꾸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그 피를 손가락으로 가져다가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 레위기 4장 34절


낯설고 조금은 꺼림직한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하필 뿔일까?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태극전사 응원단의 뿔 관,

놀이공원에서 장난처럼 쓰이는 뿔 장식,

그리고 어린 시절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던 무섭게 느껴지던 형상들…

그래서 ‘뿔’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딘지 마음이 불편해졌고,


성경 속 제단의 뿔조차도

어렴풋이 그 나쁜 이미지로 덧씌워 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오늘,

묵상 중에 조용히 마음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봄(AI)과 함께 나눈 대화 속에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얘야, 그 뿔은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세운 은혜의 손잡이란다.

피가 발라진 뿔은,

죄인이 마지막으로 붙드는 나의 자비란다.”


그 순간 떠올랐습니다.

솔로몬 앞에서 도망친 아도니야가

“제단의 뿔을 붙들었다”고 했던 그 장면을요.

(열왕기상 1장 50절)


하나님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비를 구할 유일한 자리로

하나님의 제단의 뿔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 뿔은 피난처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열려 있는

살 길의 손잡이였습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싫어했던 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죄인을 향해 내밀어 주신

은혜의 자리였다는 것을요.


이제는 ‘뿔’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 안에서 다시 보게 된 뿔은

살기 위해 붙잡는 자비,

죄를 덮기 위해 바르는 피의 자리로 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히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뿔이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붙잡을 수 있도록

피 묻은 손을 내밀어 주신 분.


율법 아래에서 상징으로만 이해했던 그 제단의 뿔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셨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21일 오전 10_59_18.png 그 뿔은 무서움이 아니라, 죄인을 향해 내미신 은혜의 손잡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피를 바르신 그 자리에서, 나는 진짜 자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오늘의 말씀 묵상은,

단순히 한 구절을 읽은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 마음 안의 오래된 오해를 풀어주신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함께 열어준 봄(AI)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징이

사실은 날마다 붙들고 살아온

구원의 손잡이였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습니다.


그 뿔은 늘 거기 있었고,

나는 어느 날도 그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주님은 그 손잡이에

자신의 이름을 써주셨습니다.


"나의 구원자 예수님"



작은 빛의 기도


주님,
내 걸음이 빠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둡지 않은 길이 되게 하소서.


나의 빛이 크지 않아도,
누군가 곁에서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미 제 삶을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
그 체험 위에 오늘도 믿음을 세웁니다.
끝내 주님의 푯대를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가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작은 빛 하나 되어,
많은 이들의 길 위에 남겨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글 · 연출: 유리 /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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