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끝나도 청춘은 다음 문장을 기다린다

by 동네과학쌤

청춘이 언제일까?

청춘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 대답을 늦출 것이다. 왜냐하면 청춘은 달력의 숫자보다, 오늘 내가 쓰고 있는 이 문장 속에서 먼저 살아나기 때문이다. 문장이 태어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청춘의 호흡을 닮아있다.


햇살이 커피잔 위로 번져오는 아침, 바람이 책장 한 귀퉁이를 들춰버린 순간,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청춘은 불쑥 나타난다. 스무 살의 청춘은 물수제비처럼 거침없이 튀어 오르다 금세 사라졌고, 지금의 청춘은 오랜 세월 주머니 속에서 반들반들해진 조약돌처럼 조용히 온기를 품고 있다.


얼마 전 여름, 교육혁신 선도 교사 연수에서 강사로 참여했다. 이제 막 교단에 선 이들과 수십 년간 교실을 지켜온 이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에듀 테크, 수업·평가 설계 이야기에 귀가 쏠렸고, 질문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누군가는 현실의 예산과 정책의 벽을 말했고, 또 다른 이는 그 벽을 허무는 작은 균열을 제안했다. 노트 위에 적힌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문장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 속에서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다시 배우려는 근육’을 가진 사람에게 깃든다는 것을 느꼈다.


며칠 뒤,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의 두 사람은 여행 경로를 그렸다. 잘못 도착할까 웃으며 걱정하는 얼굴, 막히면 다시 그리는 지도, 그리고 다시 웃는 표정. 그들은 그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또 다른 청춘을 보았다. 불안이 설렘을 먹고, 설렘이 불안을 삼키며, 서로를 키우는 시간. 길이 막히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멈춘 채로도 방향을 찾는 과정.


청춘은 직선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교차로이고, 때로는 경기 불황과 취업률 같은 무거운 표지판이 세워진 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걷는 한, 방향은 바뀔 수 있고, 표지판은 새로 달릴 수 있다. 어쩌면 청춘은 그런 불확실성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또 다른 장면을 기억한다. 늦은 밤 도서관 한켠, 시험 준비로 가득 찬 책상 옆에서 누군가는 자기소개서와 지원서를, 누군가는 은퇴 후 일상 속 휴가 일정을 적고 있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책 위에 내려앉아, 서로 다른 미래를 밝히고 있었다. 나이는 달라도, 눈빛의 결은 같았다. 무언가를 향해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청춘이었다.


청춘은 계절을 닮았다. 봄의 청춘은 서투르고, 여름의 청춘은 숨 가쁘며, 가을의 청춘은 성찰을 품고, 겨울의 청춘은 깊은 숨을 배운다. 그리고 이 계절들은 서로를 덮고 밀어내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가을의 성찰이 봄의 서투름을 위로하고, 겨울의 숨 고르기가 여름의 속도를 조율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청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얼굴로 다시 찾아올 뿐이다.


거리에서 뛰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또 누군가는 단지 오늘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땀과 바람과 심장의 박동이 엮여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그 리듬이야말로 살아 있는 청춘의 맥박이었다.

청춘은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다. 오늘의 문장이 내일이면 낯설어지고, 어제의 확신이 오늘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청춘의 질감이다. 금이 간 유리컵에 담긴 빛이 더 아름답게 부서지듯, 끝을 알기에 순간이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문장을 붙든다. 글을 쓰는 손끝의 온도와, 그 안에 조용히 자리한 두려움까지 함께. 문장이 끝나는 순간에도, 청춘은 어딘가에서 다음 문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장을 쓰기 위해 다시 펜을 드는 순간 나는 또다시 청춘이 된다.


나를 꿈꾸게 하고, 주저앉히고, 다시 일어서게 한 너에게. 언젠가 이 글이 종이 위에서 바래더라도, 그때의 숨결과 눈빛이 남아 있다면 청춘은 여전히 오늘 가장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다음 문장을 향해 조용히 번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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