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난민, 아직은 그들이 낯설다

다문화시대의 난민 인식, 이질감

by 유상민

이전 글에서 난민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난민을 어떻게 분류수 있는지, 그리고 난민에 대한 인식은 현재 어떤지 알아보자.

난민에 대한 세부 분류는 매우 다양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난민을 보고자 한다.



정치적 난민과 경제적 난민


법무부의 국내 난민 신청 사유별 현황 통계(1994-2016)를 보면, 정치적 의견으로 신청한 사람이 5,522명(24.2%), 종교 문제로 신청한 사람이 5,278명(23%),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이 2,509명(11%)이다.

위의 사유들로 온 난민들은 정치적 난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적 난민은 우리나라 난민법과 난민협약에서 난민으로 인정하는 사유에 해당한다. 때문에 난민 신청자들이 주로 이러한 사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다.

한편, 다른 이유로 온 난민들도 있다.

오로지 경제적 이익의 추구만을 위해서 온 경제적 난민이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본국을 떠나 국외로 들어오고자 하는 난민들도 존재한다. 여러 나라의 복지를 누리며 유랑하는 일종의 복지투어를 원하는 난민들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 난민은 우리나라 난민법과 난민협약에서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난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이제 난민이 누군지도 간략하게 살펴보았고, 난민을 크게 나누어서 살펴보기도 했다.

그럼 난민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선, 난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눈 감고 상상해보자.

백인 난민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흑인 혹은 황인 난민들을 떠올리기 쉽다.

오! 이런 이미지가 단순히 인종차별적으로 떠오른 건 절대 아니다.

난민들이 주로 발생하고 있는 국가들이 시리아, 예멘, 미얀마, 소말리아 등이기 때문에 백인 난민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난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인종적인 난민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국가에서 난민이 발생했다는 점은 국가의 치안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난민들은 치안이 매우 좋지 않은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느끼기에 매우 위험해 보인다.

가뜩이나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대화도 통하지 않고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는 난민들을 내국인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난민에 대한 이미지와 맥락은 난민에 대한 강한 반발심의 원인이 된다.



다문화시대인데도? 아직인걸!


이제 '다문화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다른 외국인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현재 우리는 다문화시대에 살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약 200만 명이다. 다양한 문화와 종족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섞이고 있는 다문화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은 자명하다.

중요한 점은, 설령 현재가 다문화시대일지언정 다문화시대로 들어선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문화시대의 도래는 기술의 발달과 인류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다. 국경의 의미가 약해지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국가들은 매우 많은 교류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 과정 속에서 운송수단, 이동수단의 급격한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계 이곳저곳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문화시대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문화시대는 아직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기존의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자신과 외형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에 들어오는 것을 침입으로 느낄 수 있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내집단, 외집단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자신들과 다른 집단에 속해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가지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외부인의 등장은 내집단 내의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똘똘 몽쳐 그들의 이익과 안전을 지켜내려는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바로 난민, 외부인들에 대한 혐오와 거부 표현으로 직결된다.



난민의 구분을 통해 보는 난민 인식


글의 초반부에서 알아보았던 정치적, 경제적 난민 구분을 이용하여 난민 인식을 알아보자. 정치적 난민의 경우 인도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생존을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적 난민의 경우 전혀 다르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난민 신청을 하는 그들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내국인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 온 강도처럼 보일 수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이해할 수 없으며, 나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경제적 난민은 내국인에게 매우 파렴치한 사람들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정치적 난민과 경제적 난민을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내국인과 난민을 구분하기는 쉽다. 외형적으로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민 수용에 반대하고 난민에 대한 배척과 혐오를 쉽게 이어간다. 경제적 난민의 존재 가능성은 정치적 난민에 대한 고려를 멈추게 한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두렵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국인들은 자신들과 확연하게 다른 난민들에게 강한 이질감을 느낀다. 너무나도 다른 난민들의 입장을 내국인들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특히 사회 분위기가 폐쇄적일수록, 결속력이 강할수록 난민이라는 외부인 배척은 더욱 심해진다. 예시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민족적, 문화적으로 폐쇄적이고 사회적 결속력이 강한 사회다. 그렇기에 2017년 난민 신청자 2만여 명 중 단 20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내국인들이 이러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내국인의 잘못이 아니다. 다문화시대는 아직 개인의 의식 수준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질감이 발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국제적, 인도적 차원으로 보았을 때 난민들에게 언제까지나 야박하게 굴 수도 없다. 난민에 대한 강한 이질감은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난민에 대한 혐오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권적 관점에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이질감 해소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난민들의 사회화 과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처럼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내국인의 이질감은 반드시 민감하게 다루어져야핵심 요인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국인이 지니고 있는 난민에 대한 우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내국인의 이질감만으로 부정적인 난민 수용 입장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난민 인정과 난민 수용으로 인해 내국인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있기에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내국인들이 어떠한 손해를 우려하고 있을지 다음 글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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