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민 수용 딜레마, 실수는 없어야

난민, 복지투어 여행객 아니냐

by 유상민

제주 예멘 난민은 세계적으로 극히 일부의 난민이다.

제주 예멘 난민 이외에도 세계에는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난민의 부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듯 정치적 난민과 경제적 난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동하는 경제적 난민의 경우 사실상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제적 난민, OUT!


문제가 되는 점은 경제적 난민과 정치적 난민의 구분이 어렵기에 난민 수용 과정에서 섞인다는 점이다.

난민 수용 반대파는 들어오는 난민들 중 경제적 난민의 비중이 크다고 보고,

난민 수용은 경제적 난민들에게 복지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난민 수용을 막아 경제적 난민의 유입을 차단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난민을 실제로 구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주장의 적절성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우선 들어오는 난민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을까?

구분하기 매우 까다롭다.

모든 난민들은 난민신청사유를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유로 신청한다.

경제적 난민은 애초에 난민심사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난민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정확하게 분류하고자 해도 그에 따르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수반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분류도 아니다.

그렇기에 경제적 난민과 정치적 난민, 둘 중 어느 쪽이 많은지는 말할 수 없다. 둘 다 혼재되어 있다고 보겠다.



경제적 난민을 둘러싼 딜레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적 난민까지 섞여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까?

경제적 난민을 막기 위해 난민 수용을 금지할까?

상당히 딜레마적인 상황이다.


범죄에 관련해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다.

범죄자의 유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딜레마다.

사형 집행은 되돌릴 수 없는 선고다.

사람이 항상 완벽할 수 없기에, 법적 판단에도 항상 오류가 존재한다.

용의자 혹은 범인에게 사형이 집행되었을 때, 이후 그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죽은 용의자의 목숨을 돌릴 수 없다.

우리에게 이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


1. 극소수의 억울한 사람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사형 집행.

2.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형 집행 X


어느 쪽이 좋겠는가? 이것도 난감하다.

이 예시에서 우리는 2번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이 단 한차례도 집행되지 않았다.

사형이 가진 비 인륜적 특성도 한몫했고,

사형이 범죄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한몫했겠지만,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기조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선택 기조에는 올바른 선택을 하려는 수많은 고민이 담겨있다.

문제나 수정사항이 생기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자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시 난민의 예로 돌아가 보자.


난민 수용을 아예 막는 게 나을까?

혹은 경제적 난민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모두 받아들여야 할까?


정치적 난민은 자신의 고향에서 어려움을 겪고 피난해온 난민이다.

그들은 목숨까지도 위협당했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건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

비록 경제적 이유로 온 난민이 있을지언정, 그들로 인해 정치적 난민들이 모두 환송되어

고향에서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살거나, 혹은 죽게 된다면 추후에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우리도 응당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경제적 난민이 있더라도, 있지만,

그것이 난민 수용 반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