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의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
난민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은 이미 만연해있다.
이전 글에서 난민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보았다면,
이번 글부터는 그들의 인식들이 합리적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난민들의 일자리 문제에는 여러 문제가 많다.
난민들의 일자리 구직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일 못하는 난민들이 일마저 가려서 일하려고 하니 그런 난민들이 좋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럴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첫 번째로, 난민들이 내국인이 일할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여러 일자리에서 일할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마주쳤을 때의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난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부터 급선무이기에, 전문기술을 지니고 있는 극소수의 난민들을 제외하고(이마저도 적응 문제로 어려울 수 있다) 일자리에서 일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난민들의 제한적 구직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난민들은 대부분 일자리가 부족한 환경에 투입되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일자리를 가리는 난민들이다. 제주 예멘인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자면, 난민들은 고기잡이배 조업 같은 힘든 일 대신 요식업 등의 일에 종사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요식업에서 종사하고 있던 제주민들이 밀려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범위가 축소되는 건 아닐까?
관광업을 주된 수입으로 하는 제주도의 요식업 일자리 수요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들이 요식업에서 일하더라도 기존 내국인들이 그만두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손이 부족한 곳에 난민들이 충원될 가능성이 높다. 난민들은 아직 완전히 적응을 마치지 못했기에 내국인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경쟁력 낮은 난민의 노동력은 이처럼 내국인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
일자리를 가린다고 하는 건 사실 과한 비난이다. 고기잡이배의 경우 예멘인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울렁이는 뱃멀미에 예멘인들이 느꼈을 당혹감을 이해해보자. 고기잡이배 일을 거부했다고 해서 일을 가려 받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일할 의지가 있고 얼마 되지 않는 선택지에서 현재 자신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고기잡이배 못 탄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난민들을 아랫 계급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겪은 수많은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고향을 잃고 타지에 왔다고 해서 우리가 시키는 모든 일을 토 달지 않고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난민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온 것이지, 난민을 노비나 노예 따위로 인지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로, 일 못하는 난민들이다.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난민들의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건 상당히 번거롭고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예멘인의 경우, 이슬람교를 믿기에 이슬람 교리를 지켜야 한다. 노동환경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식사부터 기도시간까지, 직장에서 난민을 위해 배려해야 할 사항은 여러 가지다. 난민과 외국인을 위한 노동환경 인프라가 잘 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다. 특히 난민들의 주된 취업환경인 요식업 등은 더더욱 그렇다. 언어적, 문화적 장벽으로 내국인보다 일도 못하는 난민들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두 가지 측면으로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 노동력이 급하게 필요한 곳에서 난민 노동력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식업 중에서도 내국인들이 꺼려하거나, 혹은 너무 바빠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반드시 있다. 그러한 곳에서 난민의 노동력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다른 측면은 결국 인권감수성 측면이다.
난민들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싶어 하고, 일자리를 구해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지속적인 생활환경을 확보하여 사회에 계속 남고 싶어 하는 것이다. 끔찍한 생활환경을 겪었던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리 없다.
힘든 환경을 겪었을수록 더 살기 좋고 안전한 새로운 사회에 잘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다. 다문화시대에서 여러 인종들은 섞이고 있다. 우리나라 내부에도 이미 많은 종족들이 존재하고, 또 세계 각지에도 한국인이 존재한다. 다문화시대에서 외국인의 정착을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손해일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 주장으로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일자리 문제에서 발생하는 난민과의 갈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국인의 인권감수성이 요구된다. 현재 난민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행동하고 있다. 난민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야만 난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건 단기적인 차원의 밀봉 책일 뿐, 결국 추후에 난민 수용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난민 수용을 위한 제도와 인식, 인프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