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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 Apr 07. 2024

VIP

부자(父子) 손님

투어 중 우연히 가이드 선배인 과장님을 지나쳤다. (프롤로그에서 리젠트스트릿(Regent Street)을 말한 그 과장님이다.) 가이드의 동선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아주 흔했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과장님도 날 보았는지 문자를 보냈다.


유수 씨! 이렇게 보니 반갑네. 투어 끝나고 커피 한잔 할까?
네 좋아요.


투어가 끝난 뒤, 나와 과장님은 워털루역(Waterloo Station)에서 만났다. 1815년 벨기에 워털루 인근에서 벌어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제국과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프로이센의 대프랑스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를 기념하여 지명이 된 곳이다. 지하철과 기차가 동시에 운영되는 런던 시내의 가장 큰 기차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외 큰 규모의 역은 킹스크로스-Kiing's Cross, 채링크로스-Charing Cross, 리버풀스트릿-Liverpoo St. 등이 있다)


"유수 씨 몬머스(Monmouth) 커피 마실래?"

"그게 뭐죠?'

"세상에, 그걸 모른단 말이야?"


몬머스 커피는 1978년 영국 런던의 몬머스 거리(Monmouth Street)에서 시작된 작은 커피숍이다. 소규모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하여 대규모 시장에 납품하던 유통업에서 이어져 온 역사가 있다.


"필터커피(Filter Coffee) 마셔볼래?"

"네."


필터커피(Filter Coffee)는 흔히들 말하는 드립커피와 같이 갈아진 원두를 필터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리는 커피를 말한다.


나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본래 커피의 맛이 얼음과 만나면 변질될 것 같았다. 커피 고유의 맛을 느끼는 '유러피안'이 되고 싶기도 했다. 대학시절 만났던 포르투갈인 하우스메이트 안드레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포르투갈로 이민을 왔다. 그래서 중국계 포르투갈인 안드레아의 성(, Last Name)은 첸(Chen)이다. 아무튼, 생김새와 별개로 그녀는 유러피안으로서 식사 후 뜨끈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목구멍에 넘기곤 했다. "Now that's real coffee. - 이게 진짜 커피지." 라면서.


"일은 할만해?" 과장님이 물었다.

"네. 그래도 잘 적응된 것 같아요."

"유수 씨 후기들이 좋더라고." 과장님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유수 씨가 블루배지(Blue Badge)에도 도전을 하면 어떨까 하는데?"


블루배지는 영국의 국가 운영 전문 가이드 양성 프로그램이다. 2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영국 국내 가이드 자격증이 주어진다. 물론,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아도 가이드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블루배지 자격증을 소지한 가이드에게는, 일반적으로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 등과 같은 장소에서도 투어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또, 자신만의 투어 상품을 개발에 판매할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가이드를 하게 된다는 건데요..." 내가 말했다.

"응, 그런 셈이지. 유수 씨는 원래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저는 전공과목이 순수미술이에요. 그래서 작가가 꿈이에요."

"그래, 갈망이 있겠네.

그렇지만 예술로는 돈을 벌 수 없으니까, 병행을 하는 게 어때?" 과장님이 말을 이어갔다.

"가이드를 하면서 작가 활동을 겸하는 거야. 예술만을 하고 살 수는 없잖아."

"글쎄요, 생각을 해보지 았았어요. 저는 과장님만큼 역사나 관광업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잘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음은 더욱 심란했다. '가이드는 언젠가 돈을 충분히 모으면 그만 둘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계심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가이드'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런 생활에 스며들어있던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규직/사무직이 주는 안정감에 무뎌져버렸다.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는. 굳이 차이점을 뽑자면 현 상황이 더 막막하다. 아무래도 정규직이라는 안정망이 더욱 뿌리치기 힘드니까. 역시 있는 사람이 더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VIP손님을 만났더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생각을 바꾸었을까?


"유수 씨, 이번에 VIP투어야."


여행사에서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무려 시급의 2배를 주는 개인 투어였다. 게다가 팁과 식사가 무조건 보장되는! 보통 워킹투어는 패키지와 다르게 팁문화가 활발하지 않다. 하루 중 일정 시간만을 함께하기도 하고, 숙소 체크인, 식사 등 세부적인 부분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킹 투어 가이드에게 팁을 주거나 식사를 권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 사실 패키지 투어 가이드도 식사는 사비로 해결해야 한다. 이번 투어는 모든 악조건을 호재로 만들어주었다. 대신, 오전에 만나 저녁 식사 이후 공연 관람까지 이어지는 긴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돈이 궁한 청년에게는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투어 당일. 아빠와 아들. 부자(父子) 지간에 여행을 온 손님 두 명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특별 가이드 유수입니다.

혹시 이번 투어에서 주로 보고 싶으신 장소나 코스가 있나요?"

손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이드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오전 일정은 전형적인 워킹 투어 코스였다. 런던아이를 시작해서 웨스트민스터 궁, 빅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제임스 공원,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 트라팔가 광장,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까지.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나는 부자(父子) 손님을 미리 조사해 둔 펍, 웨더스푼(Wetherspoons)으로 안내했다.


웨더스푼(JD Wetherspoons)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운영되는 펍(Pub) 브랜드이다. 본 회사는 1979년에 처음 설립되어 점차 지점을 확장해 나갔다.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이고 '위로가 되는-spooning' 가격의 음식과 주류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회사명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웨더스푼은 또한, 공연장, 은행, 영화관 등 다양한 사업부지(건물)를 펍으로 개조하여 각 지점마다 독특한 건축과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식사를 하며 부자손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업가였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오가며 거래를 해오고 있었다. 대학교 입시를 앞둔 아들과 함께

추억을 쌓기 위해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고. 손님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가이드님, 혹시 재밌는 곳은 없나요?"

"재밌는 곳이요?"

"네, 오전에는 상징적인 관광지를 봤다면, 오후엔 바쁘게 돌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곳을 보고 싶네요.'


손님의 두 눈은 당장의 모험을 기대하는 듯 생기 넘쳤다. 나는 점심 식사가 끝난 뒤 손님을 피카딜리 서커쓰(Piccadilly Circus)로 안내했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런던 웨스트엔드(West end -자세한 설명은 '20대의 퇴직기념여행'편 참조)에 위치한 원형 교차로(광장)이다. 1819년에 리젠트 스트릿과 피카딜리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조성된 이곳은 둥근 모양에 따라 '서커쓰-Circus' 즉, '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명칭에 붙게 되었다. 소호(Soho), 차이나타운(China Town), 리젠트 스트릿(Regent's Street), 헤이마켓(the Haymarket) 등 쇼핑과 관광의 핵심 지역을 모두 연결하는 만남의 장소라 볼 수 있겠다.
피카딜리 서커쓰(Piccadilly Circus). 왼쪽에는 이곳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형 전광판.

"아! 그래요! 이거죠!" 손님은 만족한 듯 웃었다.


우리는 카지노와 술집, 가게, 공연장 사이를 걸으며 도심의 불빛을 즐겼다. 가이드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광경에 나도 모르게 손님들과 함께 잠시 여행객이 되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차이나타운(China Town)이었다.


런던의 차이나타운(China Town)은 1950년대부터 중국 이민자들이 식당, 우체국 등을 세우며 부흥을 일으켜, 점차 런던의 예술가, 작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모이는 주점들로 가득한 핫 스폿(hotspot)으로 성장했다. 그 뒤 6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홍콩 이민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차이나타운은 런던 내 중국 이민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런던 차이나타운(China Town)

마침 중식을 좋아하는 손님이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제안했고, 우리는 딤섬집으로 들어갔다.


"가이드님 오늘 고생하셨는데 마음껏 드세요."


사실 내가 한 일이라곤 오전에 잠깐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해준 것뿐이었는데, 대우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부자손님은 모든 음식을 내 앞으로 놓아주었고,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저녁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었달까.


"가이드님은 전공이 뭔가요? 아, 혹시 이런 거 불편하면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저는 순수미술을 전공했어요." 손님과의 대화는 정말 자연스러웠다.

"그렇군요! 그럼 예술인이시군요."

"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사실 지금은 가이드를 하며 생활비만 간간히 벌고 있는걸요."

"마음의 문제입니다. 가이드님이 본인을 예술인이라 생각하면, 예술인인 거예요.

그럼 가이드님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과장님이 사준 필터커피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손님과의 대화는 마치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던 나에게 건네진 휴식시간 같았다. 한참 고민에 빠진 내게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저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정신을 차려보자. 정말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이니?

네가 말하면, 말하는 대로 정해지는 게 바로 그 '꿈'이야.'


"저…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작가요! 와, 멋진걸요."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작가는 끊임없이 글을 써야죠.

가이드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네?"

"지금 당장 가서 글을 쓰세요!"

손님의 말은 단호했다.

"가이드님 저희랑 공연까지 보는 게 일정이지만,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세요.


오늘 하루가 길었는데, 휴식을 취하셔도 좋고,

아니면 남은 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셔도 좋을 거예요.

중요한 건, 이 순간을 저희에게 낭비하지 마시고 꿈을 향해 사용해 보세요."


나는 그렇게 부자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퇴근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손님은 그저 손을 흔들 뿐이었다. 며칠 뒤, 그는 한국에 무사히 귀국했다는 연락을 주었고, 이후 명절마다 안부 문자를 보내곤 했다.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뭐라고.'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독서를 하고 잠에 든 것 같다. 부자손님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를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꼰대스러울 수 있지만,

도전이 중요한 건 절대 변하지 않아요.


배 좀 고프면 어떤가요. 언젠가 배부를 날이 올 겁니다.

응원합니다. 가이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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