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다미키 '휘파람새'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일본 근대 환상 문학 04] 하라 다미키 원작 うぐいす

by YOU EUN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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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교문에 있는 매화도, 공원 연못가에 있는 매화도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유지네 집 마당의 백매화도 피었습니다. 햇살이 꽃을 어루만지면 하얀 꽃잎은 기쁜 듯 활짝 미소를 짓습니다. 그늘진 가지에 달린 꽃들은 묵묵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매화꽃들은 모두 지그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유지네 집 마당에 휘파람새가 찾아왔습니다. 호-호케쿄, 호-호케쿄. 휘파람새는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두세 번 소리 내어 노래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담장을 훌쩍 넘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휘파람새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유지네 집 마당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 더 여유를 부리는 듯했습니다. 휘파람새는 매화나무 가지에서 가지로 능숙하게 옮겨 다니며 놀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담장을 넘어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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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는 매일 아침 찾아왔고, 점점 유지네 집 마당이 좋아진 듯했습니다. 툇마루에서 유지네가 보고 있어도 놀라 도망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디, 저 휘파람새를 한번 사진 찍어볼까.” 유지 아버지는 바로 카메라를 들고 툇마루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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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었다, 찍었어! 아주 잘 찍혔구나!” 아버지는 무척 기뻐 보였습니다. 유지도 사진이 어떻게 찍혔을지 빨리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닷새쯤 지나 휘파람새 사진이 나왔습니다. 마당의 흑담장과 매화나무 가지가 거뭇하게 찍혀 있었고, 하얀 꽃과 휘파람새의 모습이 또렷이 도드라져 보이는 멋진 사진이었습니다. 유지는 아버지에게 그 사진 한 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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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진이 완성될 무렵부터 휘파람새는 유지네 집 마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유지는 무척 쓸쓸했습니다.

유지는 휘파람새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학교에 갔습니다.

“우리 집에 왔던 휘파람새야.”

“정말?” 친구 야마다는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유지는 야마다를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마당에 가 보아도 역시 휘파람새는 없었습니다. 유지와 야마다는 사진과 마당의 매화나무를 비교하며 살펴보았습니다. 마침내 휘파람새가 앉아 있던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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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앉아 있었구나.”

“응, 바로 저기야.”

“저기에 무슨 표시를 해두자.”

야마다는 주머니에서 하얀 끈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휘파람새가 앉아 있던 가지에 묶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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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이미지 생성했습니다.




하라 다미키 (原民喜, 1905~1951)


"박제된 기억이 된 사진, 그리고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는 하얀 끈"


이번 작품은 시리즈의 첫 문을 열었던 작가 하라 다미키의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수작입니다.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매화나무 마당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유'와 '기다림'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1. 사진이 완성되자 떠나버린 휘파람새 : 소유의 한계

작품 속에서 아버지가 휘파람새를 사진에 담는 행위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휘파람새는 사진이 완성된 그 시점부터 더 이상 마당을 찾지 않습니다. 이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의 본질은 박제된 기록(사진) 속에 갇히지 않으며, 우리가 그것을 규정하고 가두려 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는 환상 문학적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소년에게 사진이라는 물질적 소유는 남아있으나 휘파람새가 떠난 자리의 외로움음 그대로 남습니다. 실존과 소유에 대해서 짧은 동화를 통해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죠.


2. 남겨진 유지의 쓸쓸함과 야마다의 '하얀 끈' : 연대의 기다림

휘파람새가 떠난 뒤 유지가 느끼는 쓸쓸함은 상실의 아픔인 동시에, 순수한 존재와 더 이상 교감할 수 없게 된 아이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이때 친구 야마다가 매화 가지에 묶은 '하얀 끈'은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기억의 이정표: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믿음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순수한 약속: 사진이 휘파람새의 과거를 박제했다면, 하얀 끈은 휘파람새가 다시 돌아올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아이들만의 순수한 약속입니다.


3. 한·일 문화 속의 '매화와 휘파람새' : 전통적 의미

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매화와 휘파람새가 갖는 전통적 의미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매화와 새: 한국 전통 회화(매조도)에서 매화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그 곁의 새는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전령의 의미를 갖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인고의 정신을 뜻합니다.

일본의 '우메니 우구이스(梅に鶯)': 일본에서 매화와 휘파람새는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 혹은 '조화로운 상태'를 일컫는 관용구와 같습니다. 하라 다미키는 이 전형적인 아름다움의 조화를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깨뜨림으로써, 근대 문명이 자연의 섭리를 다루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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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니이미 난키치,〈빨간 양초〉 보러 가기

03. 오가와 미메이, 〈달밤과 안경〉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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