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코가 킁킁 봄이 왔다네

by 영주


3월이지만 이른 아침 산책시간은 아직 쌀쌀해서 몸이 움츠러들곤 했는데, 오늘은 제법 따듯한 기운이 도는 아침이다.


포근한 공기가 마음에 드는지 강아지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덩실거리고 방긋 웃는 얼굴로 유난히 잘 걷는다. 그 모습이 어여쁘고 반가워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빠듯해질 출근 준비 시간이 신경 쓰였지만 대충 옷만 입고 나가도 될 것을. 그게 무어라고 이 시간보다 소중하랴.


마음을 고쳐먹으니 여유가 생겨 척박한 황톳빛 화단에 코를 푹 박고 냄새 맡기에 여념 없는 강아지를 기다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 강아지를 멍하게 보다가 강아지 코 끝에 눈길이 갔다. 그 끝에는 화단 속 군데군데 피어나고 있는 아기 잔디들, 푸른 잎이 돋아나있었다. 오호라, 강아지 봄 냄새 찾아 코를 박고 있었구나!? 후각 본능에 충실한 작고 하얀 것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 같이 생경하고 신비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부터 유난히 땅에 코를 처박아 마약탐지견이 가방 뒤지듯 진지하고 열정을 다해 냄새 맡기에 여념 없던 나무(반려견)였다. 사람보다 땅에 가까이 사는 것이 강아지여서일까 진작에 봄의 기운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심취했었나 보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세상의 작은 변화들도 조금 더 빨리, 가까이서 포착할 수 있는- 이것은 어쩌면 반려견 보호자로서 누리는 특별함인 것도 같다. 서른일곱 번의 봄을 지내면서도 모른 채 지내왔던 봄의 움틈 같은 것들을 이제야, 강이지 덕분에 보게 된 거니까. 생명이란 그런 걸까, 아니면 강아지라 그런 걸까. 모를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반갑고 어여쁘니 좋을 일이다.


강아지 코끝이 보여준 작은 봄을 시작으로 조만간 저 멀리 보이는 산에, 수줍지만 당돌한 사내의 키스마크처럼 울긋불긋 벚꽃과 진달래가 봄의 자국을 만들어낼 것이고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린 잎을 우수수 꺼내어 위용을 뽐내겠지. 그 푸른 봄과 여름을 지나 겨울을 견디어낸 강아지의 코가 움찔거릴 때면 봄이 왔다는 신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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