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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un 22. 2022

나의 고독에게


먼 곳에서 겪는 병치레는 더욱 서러운 법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조금 정정하고 싶은데

: 먼 곳에서 사는 건 아프지 않아도 뒤지게 고독한 법이라고..



결혼 준비할 때부터 시큼 거리던 어금니가 염증과 크랙이 심해져 임플란트 처방을 받았다. 갑자기 큰돈을 지불해야  외에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는데, 발치하러 병원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차하는 순간부터 손과 심장이 덜덜 떨리는  아닌가? 스물넷 영구치가 없는 아래 앞니 임플란트를 위해 뼈이식에 철심 2개를 박을 때도   아니란  해냈던 나인데! 내가? ?


부잣집 도련님이 가난하지만 맹랑한 여고생한테 처음으로 맞아본 뺨따귀가 이런 느낌일까? 난생처음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개구기를 낀 채 마취주사를 놓는 순간부터 엉엉 울기 시작하니 의사는 "괜찮아요"라며 (심지어 웃고 있었어) 달래주었다. 이는 내가 뽑히는데 당신이 왜 괜찮아요?라고 묻고 싶은 심정을 꾹꾹 참고 수납을 마치고 차에 돌아오니 참았던 설움 대폭발. 등이 땀에 흥건히 젖을 때까지 울고 나니 뜬금없이 그리고 아주 확고하게 깨달은 것은

"나 여기 와서 정말 외롭고 고독하구나"



억울할만큼 서러운 것은 뽑힌 생니가 아니라 내 처지였나보다.





이토록 먼 곳에 홀로 온 나를 위해 신랑은 그 흔한 술 약속조차 쉬이 잡지 않을 만큼 철저히 부부를 우선순위에 두고 지낸다. 360km가 넘는 곳을 옆동네 드나들듯 날 보러 와주는 고향 친구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부산, 거제, 통영, 여수... 출퇴근 편하고 야근도 없는 부서에 재직 중이며 출장을 대비해 새로 뽑은 자동차는 두발이 되어 어디든 쏘다닐 수 있게 해 주며 작년에는 운 좋게 30평대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종종 약속을 잡을 친구도 사귀었다.


이토록 먼 곳에, 홀로 왔음에도, 이처럼 많은 것이 원만하고 충분하기에 이를 뽑은 그 순간 느낀 저릿한 고독함이 상당히 당혹스러웠으리라.


돌이켜보면 고독한 기분은 종종 자주 나를 엄습하던 그놈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갑작스레 맞이한 조기퇴근의 기쁨을 만끽하기엔 갈 곳, 아는 곳이 집뿐인 어느 오후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50대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마치 엄마처럼 느껴지던 날

어쩌다 한 번 홀로 있는 집, 냉장고 소리만 가득한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던 밤 등 느꼈던 적막감 등..


고독은 단어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달리 일상 모든 곳에 머물며 때때로, 뜬금없이 인사를 건넨다. 그럼에도 생 이를 뽑히고 나서야 봇물 터지듯 깨달아버린 것은 모쪼록 새 터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과 기대감에 부응하느라 바빴기 때문인 듯하다.






사람들은 내게 종종 멀리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롭지 않으냐고 묻는다. 장담컨대 나의 고향으로 또는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30 넘게 나고 자란 시끄럽지만 아름다운  도시를, 복잡하지만 유쾌한 모든 관계를 떠나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한 이곳에서 지내는 일은 당연히 고단하기 때문.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거리와 이전처럼 쉬이 마주 볼 수 없는 얼굴들이 떠올라 외로움에 부채질을 하고 나아가 고독의 심연으로 나를 끌어내릴 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것과 오롯이 마주서 안녕을 고하고 그로 인해 깨달을 수 있는 그곳에서의 시간과 관계들에 감사하며, 그 마음에 기대어 쉬는 것이다.

다행이다. 나의 지난 평생이 새로이 자라나는 고독이라는 나무의 땅이어서.


지금도 먼곳에서 열렬히 나의 행복을 기도하고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봄날 자라나는 풀잎이 어여뻐 쓰다듬듯이 어루만지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도하게 된다.

@markforbes



'우리들의 블루스(드라마)'에서 동석(이병헌)이 힘겨워하는 선아(신민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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