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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ul 26. 2022

출퇴근이 즐거운 사람? 접니다 저요

지긋지긋한건 서울이 아니라 나였다


<나의 해방일지> 중 미정 대사



결혼 , 그러니까 서울경기에서 지내는 동안 저녁 모임 혹은 술자리 등등에서  <나의 해방일지> '미정이'처럼 ㅡ무르익는 분위기 도중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도무지 피할  없었다. N년차 경기도민으로 집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막차에라도 몸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생활은 애석하게도 3 수험생이 되며 시작되었다. 서울시 관악구에서 18년간 자랐고 눈을 감고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하는 , , 고등학교 통학길은 버스, 지하철 지하철,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 여정이  것이다. 3 버프로 1년간서초역으로 출퇴근하는 아빠 차를 얻어 탔지만 (매일 새벽 6,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자장가였던 시절) 20살이 되자 그마저 졸업해야 했다. 본격 경기도민 라이프시작되었다.




경기도민 라이프는 서울행 교통편의 유무와 효율 정도에 따라 레벨이  다른데, 20 중후반에 경기도 광주로 이사하면서 극강 레벨을 경험했고, 결국 또는 드디어 프로 경기도민으로 거듭났다.
정류장 근처 오픈 화장실 위치를 메모해두거나, 약속 장소는 버스 회차지점으로 잡아 시간을 벌었고, 배차시간이 길어질 때는 정류장 근처 올리브영 같은 곳에 들러 여름엔 시원히 겨울엔 따듯이 시간을 때우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 적응했지만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 출근길에 올랐고 (실제로 10분만 일찍 나와도 이동시간이 30분은 줄어들  있음) 일과를 마치면  다른 업무 같은 퇴근길에 올랐다. 설거지까지 마쳐 적막감만 남은 집에 도착하면 공허함나를 마중했다. 간간히 나의 안녕을 묻는 가족의 안부마저 성가셨고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지인들의 피드가  보기 싫은 지경이 되었을  자취방과 중고차를 알아보았지만 ( )장과 독립  자금난을 겪은 친구들은  탈주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일러주었다.


어느 날엔가, 겨우 조금 늦어진 퇴근시간 때문에 버스를 놓쳤고 길어진 배차 양재 IC 변함없는 교통체증이 불러온 연쇄효과 때문에   정류소에 내리고 나니  9시였다.  밥도  먹었는데.. 꼬르륵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할 만큼 그로기 상태인 내게 필요한 것은 탈주로가 아니라 해방이었다.

그래, 탈주로는 안전하지 않으니 해방을 노래하자.





서른한 살에 고향을 떠나며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을 위해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났다" 아니라, 떠나며-맞이했다고 적은 이유는 해방 그 자체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기 때문인데 ㅡ어쨌든  해방이라 함은 버스에 갇힌 일상과 그로 인한 침울한 일상으로부터가 아닌 외면하고 아니라고 치부했던 안락한 삶을 향한 욕구의 불만족으로부터이다.

풀어쓰자면, 자라고 나니 자연스럽게 커리어우먼에 차도녀가 되어있었다. 때때로 (의아하지만 고맙게도) 그런 나를 동경해주는 이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지만 사실 어떠한 것도 스스로 충족되지 않았다. 이런 나를 감추기 위한 도구로써 경기도민의 애환이라는 수식어로 결핍을 숨긴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때 즈음 우연일지 운명일지 모르겠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더 이상 차도녀 코스프레 그만두고 떠나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 어, 그럴까?



서울경기를 벗어나 경상도 작은 도시로 살림을 꾸렸다.

이곳은 서울보다 땅덩어리는 크지만 생활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지하철은커녕, 버스 배차도 강남역처럼 복잡하지도 많지않다.  때문인지 대중교통보다 자차 이동이 편리한 작고 아담한 곳이다.

어느 정도로 아담하냐면 평균 출퇴근 시간이 15분이고, 1시간만 내달리면 남해바다를   있다는 것? 가장 놀라웠던  20분만 가면 된다는 말은 ', 그렇게 멀리?'라는 대답을 돌아오는 그런 곳이다.


 작은 도시에서 꾸려나가는 나의 하루는 아침-저녁으로 소위 숨통 틔이인다는 말처럼 여유를 되찾았다. 이르다고 하기엔 애매한 아침7, 산책을 하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어도 사무실에  1등으로 도착한다. 저녁이 되면 그간 누리지 못한 한을 풀듯이 운동을 하고, 취미활동을 하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글을 쓴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나란히 누워 영화를 보다 스르륵 잠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해방을 노래하던 때를 떠올린다. 진정 원하던 삶이 맞는지, 맞다면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언지 곱씹어본  안도감과 함께 하루를 마친다.



어쩌면 일기에 적은 '마흔 이후에는 서울을 떠나리' 글로서 다짐했던 순간부터 나의 해방 일지는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게 해방이란 타인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온전히 확보할  있음을 의미했던 것도 같다.


가끔은 이렇게 굴레을 벗어나기 위해 굴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밖의 것들을 구체화 해보는 것이 보다 진정성 있는 접근법이   있음을, 역시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없었겠지.


인생 계획에 염두에   없는 해방은 마치 오래전 누군가  위해 세워둔 계획된 선물과도 같은 자유를 주었음에 오늘도 퇴근길이, 내일도 출근길이 즐거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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