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이 익숙해지고, 시도해 보는 게 낯선 아이들
요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처음엔 단순한 질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빈도와 맥락을 곱씹다 보면, 그 말에는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어떤 태도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일단 본인이 해보려 하기보다는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마음, 혹은 '해결'이 아니라 '지시'를 바라는 태도 같은 모습 말이다.
나는 현재 정보부장을 맡고 있어, 정보교과 선생님과 함께 학교의 디지털 기자재나 네트워크, 노트북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급된 노트북이니, 문제가 생기면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십 명씩 학생들이 찾아와 “노트북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대부분 비슷한 질문, 비슷한 문제이다. 그래서 문 앞에 노트북이 잘 안 될 때 할 수 있는 점검 리스트를 붙여두었다.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는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적힌 나름대로 학생들이 따라 하기 쉽게 간단하게 정리한 안내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 노트북 안 돼요”라는 말은 계속된다. “문 앞에 있는 안내대로 해봤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네, 다 해봤는데 안 돼요”라고 답한다. 그런데 함께 문 앞에 가서 하나하나 다시 해보면, 꼭 한두 개는 빠뜨린 경우가 많다. 화면을 닫기만 하고 재시작은 안 해서 생긴 문제가 가장 많았다. 결국, 안내대로 제대로 해보지 않은 거다. 그런데도 “다 해봤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실은 눌러보지 않았으면서 “눌러봤는데 안 돼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다. 실수라고 보기엔 반복이 너무 잦다. 안내문을 읽어 보면서 직접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누가 해 주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문제를 풀지 않고도 정답을 받아온 경험이 반복된 결과는 아닐까? 학교는 늘 답을 ‘맞히는 곳’이었지,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다. 매뉴얼을 꼼꼼히 따라 하고, 진짜 안 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시도’의 경험을 지지받은 경우가 많다.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해보라고, 시도한 걸 먼저 칭찬해 준 어른이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스스로 해보는 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허용되고 격려받으며 자라나는 것이라는 걸 느낀다.
요즘 학생들이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나도 교사로서 매일같이 무언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답을 찾는 법'보다는 '답 자체'를 주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기도 한다. 시험에서 정답을 고르는 훈련에는 익숙해도,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는 경험은 부족한 채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럼 어떻게 해요?”라는 말은 어쩌면 그간 어른들이 심어준 수동성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이런 말을 한다.
“시킨 일만 하다 보면,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도, 우리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기억해야 할 말이다. 시킨 대로만 하다 보면, 정해진 일만 하게 된다. 그건 곧, 스스로 뭔가 해볼 수 있는 힘을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문 앞의 안내문을 가리키며 학생들에게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하나하나 다 해봤니?” 그 말속엔 ‘스스로 해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작은 바람이 들어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살아가는 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도,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연습. 그것이 교육이 길러야 할 힘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