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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들의 자퇴 현상

학교: 성적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공간으로의 고민

by 유타쌤

“요즘은 성적 좋은 애들이 자퇴해요.”
최근 교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오가는 말이다. 과거에는 자퇴라고 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업 성취도가 낮아 학업 포기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서 주로 나왔던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 그러니까 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늘 우수했던 학생들조차 고등학교 입학 후 불과 한 학기 만에 자퇴를 결심하고, 검정고시와 수능을 목표로 새로운 길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신’이다.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 1~5등급 상대평가제가 적용되면서, 특히 고1 학생들의 불안감은 심해지고 있다. 내신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등급이 확정되는 구조이다 보니, 첫 1차 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면 이미 대학 진학의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수도권 주요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내신 1~2등급이 필수라고 여겨지는 현실에서, 3등급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제 내신은 틀렸고, 정시로 돌릴래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자퇴를 결심한 고1 학생은 “내신 점수가 이 정도라면 학교에 남아있어 봤자 성적을 올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덤덤하게 말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퇴를 결심하는 두 번째 이유는 ‘비효율’이다. 수행평가, 예체능수업, 조별 활동, 학교 행사 참여 등 학교 안의 모든 활동들이 ‘수능과 관계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예체능 수업 시간에 발표 준비를 하거나 뭔가 만드는 동안, 수학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조별 활동 중 친구와의 갈등에 감정을 소모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말한다.

“수능 공부만 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하루 8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과연 고등학교를 단지 대입을 위한 준비기관으로만 바라보아야 할까? 시험과 점수, 성적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현실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모든 것을 점수로 판단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학교는 단순히 등급을 따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첫 번째 사회이자, 타인과의 충돌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조율하는 법을 익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조별 과제 속에서 타협을 배우고, 학급 행사 중엔 자발적으로 나서서 책임을 지는 경험도 한다. 수행평가 발표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첫 문장을 꺼내고, 친구의 의견에 공감하며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려와 협력, 리더십과 존중을 배운다. 이런 경험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고, 수능 점수로 환산되지 않지만, 대학 이후의 삶,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 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수록, 그래서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품은 아이일수록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학원이나 독학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 바로 사람 사이에서 성장하는 법이 학교 안에는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성적보다 훨씬 더 오래 아이들을 지탱해 줄 수도 있다.


물론 자퇴라는 선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게 더 잘 맞는 방식일 수도 있고, 학교에 남는 것보다 더 건강한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시험 한 번 망쳤다는 이유로,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자퇴를 선택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단 한 번의 성적으로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은 중요하다. 하지만 성적만이 전부는 아니다. 고등학교는 점수를 넘어서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는 중이다. 진짜 중요한 건 1등급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시절 나란히 부딪히고 웃고 성장했던 경험들이라는 걸, 어른인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도록, 학교는 여전히 ‘함께 자라는 곳’이라는 믿음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한다. 성적은 지나가지만, 사람은 남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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