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절능력의 중요성
하교 시간, 횡단보도 앞에 모여 서 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누가 봐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자세다. 눈앞에 친구가 서 있어도 말 대신 채팅창을 열고, 복도에 걸어가면서도 영상 하나쯤은 틀어놓는다. 이제 휴대전화는 손이 아닌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수업 중, 책을 펴자마자 가방 속에서 진동 소리가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는 학생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학생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지만, 그 눈빛에는 ‘딱 한 번만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칠판 판서를 위해 몸을 돌렸을 때 그 학생은 순식간에 메시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어른들도 못 참는 일을, 십 대 아이들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고등학생들에게 휴대전화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다.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며, 자신이 속한 또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연락, 정보, 여가, 기록… 모든 것이 이 작은 기기에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에 ‘멈춤’이 없다는 점이다. 영상은 자동으로 재생되고, SNS는 끝이 없다. 알고리즘은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시간을 조용히 갉아먹는다.
교사로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학생이 집중을 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습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사용 습관은 ‘중독’으로 번지기 쉽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조절 없이 소비하면 오히려 생각을 방해한다. “쇼츠를 보다 보니 야자 시간이 다 지나갔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통제가 아닌 조절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바로 '자기 조절능력'이다. 이들은 단순히 의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목표 설정과 실행 통제를 포함한 자기 관리의 기술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 능력을 시험 기간에만 발휘하려고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평소에도 습관처럼 이 능력을 훈련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두고 공부한다. 물론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수행평가나 각종 수업 활동에서 인터넷이나 자료 검색이 필요해 디지털 기기가 쓰이긴 한다. 그러나 교실마다 비치된 노트북이나 공용 태블릿을 이용하면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결국 개인 휴대전화의 사용은 선택의 문제이며 무엇을 열고 닫을지는 학생 자신에게 달려 있다.
SNS를 보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고 참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꾹 참고 이겨낸다. 상담 중에 “시험 2주 전이라 참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고, 한 남학생은 “학원 끝나고 11시 반부터 30분 동안만 게임해요. 진짜 그거 하려고 버틴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내면의 유혹을 조절하며 자기만의 원칙을 세워가고 있다는 증거다.
다행스러운 건 자기 조절능력은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스스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눈에 보이도록 적어두는 것이다. 막연히 ‘오늘은 열심히 하자’가 아니라, ‘8시부터 9시까지는 수학 문제집 2단원, 그 뒤엔 10분 휴식’처럼 꼼꼼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가족이나 담임 선생님에게 공유해 보면 더 좋다. 누군가에게 내 계획을 말하면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잘 지켜낸 날에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학생들은 여전히 휴대전화의 유혹을 통제하지 못한다. 교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교과서 대신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틀고, 드라마를 보고, 심지어는 온라인 게임을 켜두기도 한다.
교실에 노트북이 비치되어 있어 자료를 찾거나 문서를 작성하기에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단점이 더 크다. 감시의 눈이 사라지는 순간 교육 도구는 곧 오락 기기로 바뀐다. 수업과 무관한 사이트를 차단하더라도 그들은 어떻게든 우회 방법을 찾아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기기를 막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늘 “통제”라는 말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억제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외부의 통제가 아니라 내부의 조절이다. 남이 보지 않을 때도 멈출 줄 아는 힘, 더 보고 싶지만 끄는 결단력. 이 힘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전반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 능력이다.
휴대전화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아이들의 하루를 설계하고, 주의를 뺏고, 습관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은 기계를 다루는 방식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다. 지금 이 순간 화면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나를 잘 조절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다루는 손보다 자신의 삶을 더 잘 다루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