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발자국 소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 아프리카 속담-
교단에 서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떠들썩하게 교실을 주도하는 아이들보다도 한쪽에서 기가 죽은 듯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더 눈에 밟힌다. 말수가 적고 표정조차 굳어 있는 아이들, 질문을 해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이들 말이다. 교사로서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단순히 수줍음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개 가정이 있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의 부모님이 야간에 따로 약속을 잡고 아이와 함께 학교로 오셨는데 상담 내내 아버지는 아이의 단점만 이야기했다.(보통은 학부모 상담때 부모만 오신다)
“애가 산만하고, 집중을 못해요. 집에서도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못 봤습니다. 숙제도 안 하고,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아이의 부족한 점만 나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치를 보듯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쩌면 늘 그래왔을 것이다. 집에서 끊임없이 단점만 지적당하고, 스스로는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교실에 들어오면 이미 마음이 움츠러들어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는 실수할까 봐, 또 혼날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주눅 든 모습만 남는다.
다른 학생의 경우는 그와는 또 달랐다. 수업에 들어가면 늘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내가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더라도 교과서나 필기도구조차 꺼내놓지 않았다. 교실의 다른 아이들이 책을 펴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한 번은 2교시가 시작될 즈음, 정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오는 그 학생을 보았다. 그런데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고, 가방조차 메고 있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와 앉아도 준비물이 없으니 수업에 참여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이 학생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무력감에 가까웠다.
“어머니도 거의 손을 놓으셨어요. 아이가 뭐든 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죠’라면서 그냥 포기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도 지칠 수 있다. 아이가 반항하고 거부하면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가 힘들게 하더라도, 부모는 절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부모의 태도가 지나치게 강압적인 것도 문제지만,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아이는 스스로 중심을 잡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적절한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끊임없이 억누르고 강제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아이가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자율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부모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언제나 곁에 있다는 안정감도 함께 필요하다.
예전에 상담했던 또 다른 학생이 떠오른다. 그 학생은 공부하기 싫다고, 조퇴하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짜증을 냈다. “엄마가 왜 이렇게 안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보내주면 되잖아요”라며 불평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그 학생조차도 어머니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사실 엄마가 조퇴를 잘 안 시켜주긴 해도 이유는 알아요. 자꾸 조퇴하면 안좋은 습관 든다면서 안된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제가 독립해야죠, 뭐.”라며 웃었다. 즉, 그 학생은 잔소리처럼 보이는 어머니의 태도 속에서도 여전히 ‘관심과 사랑’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손을 놓아버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떨까? 그런 아이는 ‘나는 자유다, 간섭받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부모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는 점점 자존감을 잃는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감각에 빠지고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강압 속에서도, 그리고 방임 속에서도 무너진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부모의 애정 어린 관심이 함께할 때 아이는 중심을 잡는다.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사인 나는 날마다 그런 균형을 고민한다. 교실에서 주눅 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의 집에서의 모습이 그려진다. 혼나며 움츠러든 아이, 혹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 교사가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작은 격려를 건네줄 수 있다.
“괜찮아. 좀만 참고 더 해보자”라는 말, 혹은 아이의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오늘은 네가 먼저 책을 펼쳤구나” 하고 칭찬하는 일, 그런 사소한 경험이 아이를 조금씩 일으켜 세운다고 믿는다.
결국 교육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부모도, 교사도,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강압은 아이를 무너뜨리고 무관심은 아이를 잃게 한다. 그러나 애정 어린 관심과 적절한 지도가 있다면 주눅 들어 있던 아이도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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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간 써온 글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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