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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30. 2019

8시간의 자유

16대 8의 결투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글은 젊은 날 치기 어린 결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결심한 간헐적 단식에 대한 얘기다. 몇 년 전 TV에서 소개되며 전 세계 다이어터들에게 폭발적 관심을 받은 그 간헐적 단식이 맞다. 


운동을 좋아하는 내게 운동과 함께 늘 따라다니는 관심사는 다이어트였다. 비만 체형은 아니지만 이왕 운동을 열심히 한다면 효과를 확인하고 싶어 습관처럼 다이어트를 했다. 여러 번 목표를 이룬 경험이 있어 다이어트라면 자신 있었다.

밥 두 숟갈 덜 먹을 것. 짜지 않게 먹을 것. 빵과 과자는 줄일 것.

이 세 가지 규칙이면 체중은 쉽게 줄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조금 덜 먹는 것이 포인트였다. 삼십 대 중반까지 착 들어맞았던  규칙이 더 이상 내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건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불어난 몸무게를 줄이고 싶어 다이어트를 해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필라테스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다이어트까지 한다면 결혼 전 입던 스키니진도 문제없이 입겠구나 싶었다. 의심 없이 나의 세 가지 규칙을 지켰다. 결과는 실패였다.

적게 먹는 건 어떻게든 되었다. 빵과 과자도 마음 단단히 먹고 끊었다. 싱겁게 먹는 것에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국 없으면 아쉽고, 간은 딱 맞는 걸 좋아하는 우리 식구 입맛에 맞춰 요리하려면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일 때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식구들과의 식사는 맛없게 먹으면 문제가 좀 생긴다. 맛있으니까 덜 먹는 것도 슬쩍 느슨해진다. 

문제는 체중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직장생활 졸업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던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어느 주말 오후 TV에는 배우 이선균 씨가 친구들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꿈꾸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지나는 중이었다. 기차 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배우 이선균 씨와 고규필 씨가 간헐적 단식에 도전했다. 16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8시간은 자유롭게 먹는다는 규칙이었다. 이선균 씨는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지만 먹는 것이 일상의 큰 보람인 고규필 씨는 발을 동동이며 먹는 8시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의 위에게 쉴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당장 간헐적 단식에 도전했다. 6시 전에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침에는 더 이상 누룽지를 끓이지 않고 아이와 남편은 과일과 주스, 두유 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아침으로 죽을 먹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건너뛰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되면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시계가 열 시에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땅 하면 100미터 달리기를 출발한 우사인 볼트처럼 음식을 먹었다. 

좋은 점은 많았다. 공복시간 따뜻하게 우린 차 한잔을 마시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위염도 많이 다독여진 것 같았다. 쉽게 주어지지 않는 식사시간은 평소보다 즐거웠다. 


그 즐거움이 문제였다. 


먹는 즐거움은 곰에게는 겨울잠을 위한 식량 저장을 하며 찾아온다. 나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 같았다. 외출을 하면 빈 손으로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좋아하는 찹쌀 꽈배기 집 앞을 지나면 먹는 8시간을 위해 꽈배기를 샀으며, 빵 집 앞을 지나면 마들렌과 샌드위치를 샀다.  16시간 단식하기 위해 먹었고,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먹었다.  오히려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던 때보다 많이 먹었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몸무게는 겨우 1킬로그램이 줄었다. 저녁 한 끼만 굶어도 줄일 수 있는 몸무게라 생각하면 다이어트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겨우 현상유지를 한 것 만도 다행이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급속도로 몸무게가 줄었지만 갈수록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왔다. 인내력의 둑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16:8이라고 써 놓고 16시간의 절제와 8시간의 자유라고 읽은 내 잘못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에는 절대 곰이 되지 않겠노라고. 사슴처럼 우아하게 야금야금 당근과 오이를 먹겠다고. 다이어트의 핵심이 인내란 걸 이렇게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꼭 간헐적 단식에 성공해  일상이 되어버린 우아한 다이어터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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