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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01. 2019

그렇게 러너가 되었다

토요일 정오. 하루 종일 이불 뒤집어쓰고 자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암막커튼을 친 방안은 여전히 캄캄했다. 눈을 떠도 캄캄한 세상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안이었다면 나의 슬픔이 더 커 보여 초라해질 것만 같았다. 심각한 우울감이 지나는 중이었다. 나는 해마다 독감을 앓듯이 우울감을 마주했다. 어느 해에는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고향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세상, 매일같이 치열한 나의 일터, 미어터지는 만원 전철, 방과 욕실, 주방이 세 발짝만 걸으면 닿는 8평 남짓한 원룸을 벗어나면 숨통이  조금 트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휴가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회사 팀원들과 회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을 터벅터벅 마음 내키는 대로 걷던 중이었다. 불쑥 내 앞에 우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전조현상도 없었다.  얼마 전 망친 소개팅 때문인가, 마음에 안 드는 회사 생활 때문인가, 꼬이고 꼬인 내 심보 때문인가 원인을 유추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특별할 게 없었다. 연애도 못하는 채로 30대 중반을 마주한 것은 언제나 한심스러웠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직장은 힘든 순간만 버티면 꾸역꾸역 연차가 쌓인다는 사실은 이미 터득한 후였다.  어쩌면 얼마 전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 맞고 배신당한 대학시절 친구 때문인 것도 같았다. 사람에 치이면 어떤 이유보다 후유증이 컸다. 맥주 두 잔을 마셨을 뿐이지만 나사 풀린 인형처럼 휘청거리며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잠이나 실컷 자자’

그렇게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누워서 눈을 떴는데 겨우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허무하게 시간이 흐를 테고, 무한도전을 보며 조금 웃다가 다시 우울한 마음에 눈물바람으로 잠들 것이다. 뻔한 시나리오는 늘 최악이다. 이 하루의 운명을 우연에 맡기려면 어떻게든 컴컴하고 비좁은 방을 빠져나가야 했다. 보이는 대로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빌라 출입문 앞에 서서 어디로 가볼까 생각했다. 왼쪽으로 가면 카페가 늘어선 대로가 나올 것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공원이 나올 것이다. 카페에서 즐거운 수다를 이어가는 사람들 속에 앉은 나를 잠시 상상해보았다. 두 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외로운 풍경이었다. 오른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공원에 가서 달리기나 하자’

마치 러닝이 당연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실은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했던 달리기를 제외하면 내 의지로 어딘가를 달려본 기억이 까마득했다. 헬스장에 가도 러닝머신은 걷는 곳이었지 힘들게 뛰어본 적이 없었다. 달리는데 딱히 익혀야 할 동작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달려보자 생각했다. 마침 운동화도 신고 나왔고. 그렇게 뭔가 목표를 정하고 나니 휴일 낮의 어린이대공원에 들어서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들이 나온 가족과 연인들 사이를 달리는 운동하는 언니는 상상해보니 멋지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쁜 레깅스를 골라 입고 나오는 건데.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스마트폰에 달리기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스타트를 누르고 달리면 내가 달린 거리와 속도, 시간이 기록되었다. 딱 30분만 뛰어보고 기록이 좋으면 sns에 자랑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손목 발목을 간단히 스트레칭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면 30분을 채우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달렸다. 달리면서 지나치는 풍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풋살동호회 사람들, 턱걸이하는 할아버지, 배드민턴 치는 연인들. 오랫동안 어린이대공원을 내 집 마당처럼 드나들었는데 이렇게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새삼 낯설었다.

천천히 뛰어도 역시 달기는 건 힘들었다. 허벅지가 무거워 한발 내딛기도 힘겨웠고, 땀이 이마와 목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분명 나는 달리는데 내 옆으로 파워 워킹하는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지나갔다. 얼마나 거북이처럼 달렸는지와 상관없이 목표한 30분을 채웠다. 스마트폰의 어플을 보니 나는 1km를 9분대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걷는 편이 오히려 빨랐을 속도다. 그제야 내 옆을 지나쳤던 아주머니들의 속도가 이해가 되었다. 자랑할만한 기록은 아니라서 어플 화면 캡처 대신 셀카를 한 장 찍었다. 내 30대의 가장 우울한 날 대낮에 찍은 셀카는 땀으로 엉망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공원 구석의 벤치에 앉아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했다. ‘토요 러닝’ 짤막한 문구도 넣었다. 매일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인 것처럼. 얼마 안가 격려와 부러움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분명 조금 신날 것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러닝용 운동화부터 검색하겠지. 뻔한 시나리오는 늘 찰떡같이 들어맞았다.

그렇게 나의 달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해의 우울감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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