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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7. 2019

겨울점퍼 입던 날

내 손가락 만하던 아이의 발이 어느새 한 손에 겨우 잡힐 만큼 커졌다. 아이는 금세 자란다. 작년 겨울에 신던 양말은 인형이 신었던 것 마냥 작아졌다. 바지도 껑충해지고, 티셔츠는 배꼽티가 될 지경이다.
바뀌는 계절에 맞추어 옷장을 정리하며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실감한다.

작아져버린 옷들을 정리하고 나니 옷장이 썰렁하다. 작년에 입던 외투도, 두꺼운 바지도 모조리 작아졌다. 갑자기 한파라도 몰아닥치면 큰일이다 싶어 외투를 사러 갔다. 외투를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겨울바람이 들어올 틈을 완벽하게 막아주면서도 가벼울 것. 그러려면 롱 패딩이 최적이었다. 롱 패딩이 진열된 옷 가게 앞에서 간단한 두 가지 기준을 놓고도 한참을 고르지 못하고 서성였다.

‘내년이면 율이는 껑충 더 자랄 텐데’

아이의 자라는 속도를 생각해 롱 패딩을 고르려면 올해는 외투 자락으로 땅을 쓸고 다녀야만 할 것 같았다. 다스베이더의 망토 같은 코트는 너무한 것 같고, 그렇다고 딱 맞추어 고르자니 내년에는 못 입힐 것만 같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래도 너무한 것보단 예쁜 게 좋다. 땅에 끌리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외투를 골랐다.



어린 시절 대략 대여섯 살 무렵일 때부터 내 옷은 언제나 할아버지가 사주셨다. 가정의 경제권을 손아귀에 쥐고 매일 깨알같이 가계부를 쓰시던 할아버지의 노트를 기억한다. 고등어 한 마리가 얼마, 농기계 수리비가 얼마, 매일의 지출이 한 톨 틈도 없이 빽빽하던 가계부에서 유일하게 깐깐하지 않은 지출은 손주들에게 뭔가를 사줄 때였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시장 아동복 매장에 가면 온갖 화려한 무늬의 원피스와 외투들이 걸려있었다.


그 해 겨울에도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외투를 사러 갔다. 할아버지는 내게 어울릴 만한 외투를 가게 주인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 제일 예뻤던 것은 꽃무늬 원피스였는데 말이다.


"할아버지 나 저거" (모기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거? 뭐가 마음에 드노?"

"저거 치마"
"저거는 안돼~ 얇아서 춥어"

"응응~~ 치마"

"안돼~ 밖에 날씨가 얼마나 추운데, 얼어 죽는다~"


할아버지는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주인아줌마와 상의해서 빨간색 점퍼를 샀다. 입이 뾰로통해 있는 내게 점퍼를 입혀보며 딱 맞고 좋다며 만족스러워하셨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빨간 점퍼에 소매는 안감이 하얗게 보일 때까지 둘둘 접어 산타가 따로 없는 모습으로 눈물 콧물 흘리며 집에 왔던 날이 기억난다.


그해 산 빨간 점퍼는 다음 해엔 무릎쯤 왔고, 그다음 해엔 허리를 겨우 내려오는 길이로 더 이상 소매를 접지 않아도 됐다. 겨울이 추웠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꽤나 따뜻한 점퍼였나 보다.


옷이 껑충해질 때마다 할아버지도 내가 자라는 걸 아쉬워하셨다. 그보다 내가 클수록 늙어가는 자신의 시간을 더 아쉬워하셨다. 시간은 흘러서 나는 자랐지만 그 모든 시간이 흘러가버린 것은 아니다.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빨간 점퍼가 남아있는 걸 보면.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패딩을 입혀 아이를 등원시킨다. 바람이 차고 겨울비까지 내리는 아침이다. 눈이 왔더라면 좋을 뻔했다. 롱 패딩이 있는 한 겨울바람이 무섭지 않은데. 하원 하면 손잡고 겨울비를 맞으러 가야겠다. 율이의 겨울 기억에도 오늘의 롱 패딩이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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