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사랑 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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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많은 사람들이 인도라는 말만 들어도 눈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막상 걸어본 인도는 그저 동남아의 어느 나라들처럼 낯설고 지저분했다. 부자는 한 없이 부자였고 가난한 이들은 또 끝없이 가난한 나라. 명상도 신비도, 요가도 정신적 배부름만으론 다가갈 수 없다.
주지 마요.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3일 만에 길거리로 나온 나는 안에 머물며 빈둥거리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들을 보며 묵묵히 걸었다. 그는 이곳저곳 설명을 하며 내 발걸음에 맞춰 산책이라도 하듯 느리게 움직였으니 어슬렁거리겠다는 내 목적은 대충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손을 내밀며 주위를 얼쩡거리기에 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동전을 꺼내려다가 그의 말에 멈칫했다. 그가 다른 백인 관광객 여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봐요. 어찌 되나.
난 백인여자가 아이에게 돈을 주려고 꺼낸 지갑을 아이가 통채로 낚아채서 달아나는 걸 처음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백인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뒤쫓아갔지만 잠시 후 고개를 흔들며 되돌아왔다.
혼재,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 사는 이 도시는 상인과 구걸하는 아이들과 형형색색의 컬러풀한 색상이 소가 거닐고 개들이 활보하는 오물과 쓰레기로 질척거리는 길에서 마구 뒤섞여 정신적 평안은 뒤로 물러나고 먼지 나는 현실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안내로 지저분하고 질척거리는 골목골목을 지나 맛있다는 블루라씨를 먹어보고 한국식당에서 식사도 했다. 호텔의 양식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먹으니 새삼 한국이 그리워졌다.
나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많이 늦게 태어났다. 바로 위의 오빠와도 나이차가 십오년이나 났으니까. 삼십 대 중반에 도착한 나이였지만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언제나 나는 막내였다. 어쩌면 그래서 아빠는 휘둘리지 않는 나를 귀엽게 봐주셨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른 형제들도 나이 차 많은 막내가 자식 같았기에 경계심 같은 게 없었으니 나름 편안했다. 아이가 유난히 잘 들어서는 몸이라는 엄마는 일곱이나 낳았지만 칼칼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모두 반듯하게 키웠다. 자라고 나서야 어떻게 달라졌든 자라는 동안 칠형제자매는 큰 말썽 부리지 않고 온유하게 자라주었다. 매사에 공평한 엄마였기에 늦둥이라고 더 귀여움 받고 더 떠받들며 키우진 않았다. 큰 언니가 조카에게 입혔던 옷은 시간이 지나 내가 그 사이즈와 비슷해지면 내 차지였다.
생각 따로, 보는 것 따로, 듣는 것 따로 어슬렁거리며 걸으니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기에 해질녘에 우리는 갠지스 강의 가토에 도착했다. 그는 보트를 불러 강을 한 바퀴 돌며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하고 다시 가토로 돌아와 배를 적당한 자리에 세웠다. 강가 여신에게 올리는 제사의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꽃불을 띄웠다. 난 무슨 소원을 빌까. 아빠가 편안한 곳에 머물길 바라는 소원을 빌기로 했다. 소원을 담은 수천 개의 꽃불이 어둑어둑한 갠지스 강을 따라 가물가물 흘러간다. 그 닿는 곳이 어딜까. 아빠가 지금 있는 곳까지 흘러갈 것만 같은 기분, 그래 이곳은 이제야 마땅히 인도답구나.
과거의 기억으로 사는 사람들에겐 새로움이란 얼마나 무색한가. 무관심한가. 기억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얼마나 현재에 무기력한가.
3
그 다음 날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며 고마워하고 좋아했었지만 그는 내 이름도 묻지 않았다. 나 또한.
그가 가고 셋째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소식 들었다며 어쩔래? 라고 물었다. 뭘 어쩌냐고 대답하며 그냥 웃었다.
알아봐주까?
놔둬요. 네째 오빠가 보낸 진짜 가이드일 거예요.
그는 누구나 아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프로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일을 할 사람이 누군지는 곧 떠올랐었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나쳤던 그 질척하고 우울한 길을 혼자 걷고 싶지는 않았다. 딱 한 번,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한 경험들이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그랬다.
어슬렁거릴 곳으로 왜 나는 이곳을 택했을까. 차라리 뉴욕의 소호거리가 어슬렁거리긴 더 낫지 않을까. 홍콩의 거리를 산책하는 게 더 나았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나의 일상은 이틀 전으로 돌아갔다. 커피믹스 같은 달달한 커피를 스토로우로 빨아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나머지 시간이. 그리고 진한 인도의 여운을 코끝에 묻히고 돌아왔다. 나 또한.
돌아온 날부터 이상하게 머리가 아팠다. 인도앓이가 아니었다. 시간앓이인가. 타이트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견고했던 성벽에 실금이 가듯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도 전과 인도 후로 나눠진 것처럼.
표면적으로 몇 십 억이었던 아빠의 재산은 양파껍질을 까듯 툭하면 튀어나왔다. 그걸 여러 아저씨들이 티안나게 전해주곤 했다. 그러나 내겐 여전히 이백만 원이 전부였다. 나에게도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대충 눈에 보였다. 정치를 하는 두 오빠의 자금관리를 네째 오빠가 하고 있었으니까. 둘째 오빠는 진작 해외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섭섭할 것도 없고 불만일 것도 없었다. 내가 이만큼 살고 있는 이유는 아무리 혼자 중뿔나게 잘 한다고 해도 사실 불가능이란 걸 안다. 후광 때문.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차고 넘치지만 정승이 죽으면 발이 뚝 끊긴다고 했던가. 현재의 이 나라에서는 힘 빠진 격언일 것이다. 실제로 아직도 아빠의 영향력은 많은 아저씨들에 의해 이어져가고 있었다. 아빠는 죽었지만 유령처럼 주변을 맴돌며 권력의 분열을 방어해내고 있었다. 아저씨들의 눈속엔 늘 아빠가 살고 있었다.
아가씨, 유변입니다. 한 번 뵈러 갈게요.
아빠 변호사인 유변 아저씨가 온단다. 우리가 변호사를 만나는 일은 둘 중 하나 때문.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정확히 삼십 분 후 유변 아저씨의 차가 주차장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곧 눈앞에 나타났다.
뭐라고요? 결혼이라뇨?
대뜸 유변아저씨는 공적으로는 숨겨진 아빠의 실제 유언을 들고 왔다.
아가씨가 결혼을 한다는 조건으로 남겨진 유산이 있습니다.
뭐 결혼은 혼자 하나요.
그 조건 안엔 남자가 지정되어 있어요. 그 남자와 결혼을 해야 유산 상속이 완료되는 거지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대뜸 결혼 하라면 아저씨는 하겠어요?
네, 유산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조건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