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33

단편소설

by 수요일

단편소설 꽃비_33

모처럼 창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을 거야. 헐벗었던 나무에 연초록 잎이 뽀얗게 매달린 것을 보며 계절이 바뀌었네 봄이 왔네 하지만 어쩌면 나무가 바뀐 것일지도 모르지. 봄을 달고 다니는 나무들이 일을 마치고 떠나면 그 자리에 여름을 맡은 나무들이 도착하는데. 요즘은 나무들이 이상해져서 여름 나무들이 안 떠나기도 하고 가을 나무들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많으니.

아, 그래서 나무가 움직이는 거? 나무를 움직이는 건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계절이 바뀌면 나무들이 돌아다니는 거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모든 나무를 움직이는 건 바람 맞아. 해도 나무를 움직이고 물도 나무를 움직이게 해. 나무가 움직이는 것과 조금 다르게 아니 같은 걸지도.

아이고 어려워. 나도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왜 나무가 되고 싶어?

뭐야! 에이 늘 그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무가 되면 오래 오래 살 수 있잖아

응? 오래 살고 싶어서? 그렇지. 오래 산다는 건 인간의 꿈이기도 하지. 아닐 수도 있고. 늘 그래. 이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이 세상은 말야.

바보야. 난 오래 살고 싶은 게 아니라... 라는 말은 입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부끄러운 걸.

그래도 멀쩡하게 돌아온 현수와 함께 찬수도 돌아와서 꽃비는 징계에서 풀렸다. 퍼스트는 꽃비가 막내 일을 놓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막내들에 대한 압박을 풀었다. 꽃비에게는 그게 더 힘든 일이었다. 자기 때문에 막내들에게 프레스가 가해진 게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막내들도 꽃비와는 좀 서먹해졌다.

거봐. 꽃비 셰프님 때문이라고 내가 했잖아

그게 왜 꽃비 셰프님 때문이에요. 퍼스트가 한 짓이지

어쨌든 빌미는 꽃비 셰프님이,

언니 참 답답해요. 프레스는 퍼스트지 왜 그쪽으로 화살이 가요.

이러쿵 저러쿵 막내들은 쉬는 자리에서 꽃비를 입에 담았다. 물론 자기들끼리라지만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들으라는 듯하기도 해서 많이 미안했다. 근영이가 세상에 막내들이 말야!로 시작해서 대박 호통 쳤다고 이게 누구 때문인데 라며 분해할 때 꽃비는 놔둬 틀린 말도 아닌데 라고 했다가 잔소리만 실컷 들었다. 너 때문에 내가 심장이 말라죽겠다. 이것아!

아무튼 다행이다. 넌 나보다 오래 살 테니

음, 그렇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아니라고? 왜? 나무는 특별한 일 없으면 안 죽잖아. 오래 오래 오래

그거. 바로 그 특별한 일이 오대수에게 있었지. 번개나 태풍이나 담뱃불이라든지 하는,

아 담뱃불... 역시 나무를 제일 많이 죽이는 건 사람이겠지? 이리 베고 저리 베고 태우고 자르고 부수고

그래 사람이 많이. 숲을 없애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봐. 그것도 뭐 살아남자고 하는 짓일 테니... 하지만 나무를 가장 많이 죽이는 건,

응? 자연재해 같은 건가?

그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무지. 나무가 나무를 제일 많이 죽여

나무가 나무를?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이는 건 사람이다. 라고 생각해보니 왠지 납득이 된다. 하지만 나무가 어떻게?

살아남기 위해서지. 침입해온 다른 나무의 뿌리를 막고 말려죽이거나 가지를 한껏 펼쳐 햇빛을 막아서 죽이지. 나무는 참... 그래서 나적나.

나적나! 아하!

아닐 수도 있어.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내가 모르는 일들이 이 세상엔 너무나 많아. 꽃비는 안 그래?

아... 그래. 너를 알기 전까지는 나도 나무라는 존재를 너무 몰랐으니. 내가 안다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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