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꽃비_34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았다. 브레이크 타임, 찬수가 돌아온 뒤로는 그 브레이크 타임을 정말 즐길 수 있었다. 비가 그친 오후는 청명하다. 나무와 인간 사이의 시간 개념은 다를까. 아마도 많이 다르겠다.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보내온 나무에게 기껏 수십 년인 사람이란 존재는 얼마나 미약할까. 그 존재가 또 밀어낸 낱낱의 수백 수천 년은 얼마나 거대할까.
모든 나무는 각각의 시간을 담고 있어서 읽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드러나. 하지만 그 또한 나무 아닌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랜 옛 어느 날의 지나가버린 하루일 거야.
사람도 그럴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는 각자 개인에게는 소중하거나 잊고 싶은 기쁨이거나 슬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그저 남 이야기일뿐. 슬픔에 대하여 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살아있는 역사책. 거짓도 없고 오만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기록되었을 나무들의 역사를 생각해보며 이 자리가 왠지 편안해지는 꽃비다. 담담하게.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담담하기만 할까. 아니면 그조차도 심쿵하게 보내는 하루 하루일까. 바람이 은행잎과 두런거린다. 나무와 바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번역해줄 이는 없을까.
자기가 지나온 길에 있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현수에게 물었을 때 현수는 담담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누군가 있는 것같은 느낌에 뒤를 돌아본다. 나무뿐. 은행나무가 꽃비에게 괜찮다고 말을 건넨 것인가보다.
가까운 사람이 있어. 나무와 풀과 꽃과. 살아있는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에겐 저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릴 거야.
나는 아닌가봐? 안 들리네.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그래. 내가 꽃비에게 다가선 것만으로도 충분히 꽃비는 나무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야.
준비라고 했다. 언제쯤 그 준비가 끝날까. 묻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였나보다. 초조하지 말라고 한다.
때가 되면 다 돼. 초조할 이유 없어.
라고. 나무라 그럴 거야. 현수는 나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얼마나 긴 시간일까. 현수의 그 때란.
꽃비 씨~ 잠깐만!
대장이 모처럼 꽃비를 찾았다. 이 자리는 종종 와야겠다. 너무 편하잖아. 새삼 은행나무를 돌아보는데 나뭇가지가 해를 가려준 게 보였다. 해는 꼭대기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원래 나뭇가지가 이렇게 낫었나? 생각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참 좋다. 힘들어도 그냥 좋은 게 좋았다.
조사를 해봤는데 그날 냉장고에 기한 지난 식재료들 말이야. 아무래도 다른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거 같아.
네?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냉가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
꽃비 씨는 퍼스트 어떻게 생각해?
퍼솊이 퍼솊이죠. 하하. 저야 뭐.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어요.
배운다...라. 흠... 독립시킬 때가 됐나.
네? 아... 네.
대장이 알았다고 하고 꽃비는 저녁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독립이라... 냉가에서 누군가가 독립한다는 건 어쩌면 성공을 보장 받은 거나 다름 없다. 냉가의 프랜차이즈를 해도 성공이고 혼자 가게를 내도 성공일 것이다. 내가 독립한다면? 큰 나무가 있는 가게를 얻고 싶다. 아주 큰 나무.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아니야.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초조하지 말자. 아직 때가 아니니까.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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