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오지 사람이 오나
봄꽃들에게
찬찬히 와라. 걸음 서두르지 말고 넘어져 무릎 까지지 않게. 한 잎이라도 상처입지 않게 다정하고 곱게 와라.
한철이다. 어차피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지. 정을 줄 사이도 없이 흐드러지게 웃다가 찌푸릴 줄도 모르고 아파할 줄도 모르고 손 끝 발 끝 저리도록 타들어가 사라질 테니,
네가 사람의 사랑보다 낫다.
그립다 하지 않고 사랑한다 하지도 않고 기다렸다 하지도 않고, 반갑다 하지도 않게. 바라보고 냄새 맡고 어루만지고 지나갈 한철. 노란 건 너 분홍은 너 하양은 너.
이름 부르지 않아도 너.
나를 부르지 않아도 너.
찬찬히 와라. 기다리는 동안이 더 따뜻하게. 찬찬히 와라, 어느 늦은 봄날에도 먹먹하지 않게. 너를 위해 흘릴 눈물은 말라버렸다. 목구멍이 노랗게 타들어가 혓바닥에서 돌소금이 나오도록, 애타게 기다렸다고 하지나 말자.
꽃이나 오지 사람이 오나.
꿈을 깨듯 봄이 가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너를 부르지 않아도 노랑 분홍 하양 보라. 나를 부르지 않아도, 겨울턱 얼어붙은 발바닥 문지르며 열심히 그림자 길어질 봄길을 걷고 있을 테니. 나를 부르지 않았으니 반갑다 하기도 없다. 그립다 하기도 없고,
사랑한다 하기도 없다.
이름 없는 봄은 우리에게 이리도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