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끼
01
재미아저씨가 죽었다. 전쟁 때 쌕쌕이를 몰고 적군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재미아저씨는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전쟁 중 부상으로 다친 다리를 절며 마을의 궂은 일을 돕고 마을 사람들이 챙겨주는 먹거리로 끼니를 이어가던 재미아저씨였다. 마을 어른들은 고마운 분이라며 일을 안 시키려고 했지만 재미아저씨는 말도 안 된다고 손사레를 쳤다.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일을 도왔다.
재미아저씨의 가족들이 미국에서 왔다. 장례식을 미국에서 치르려고 했지만 아저씨의 유서를 발견하고 마을 뒷산에 묘를 세웠다. 재미아저씨를 닮은 아저씨가 아들이라고 했다. 재미아저씨의 묘비엔 나의 영웅, 제이미 이곳에 잠들다. 라고 쓰여 있었다.
뛰기는커녕 걷는 일조차 힘겨운 재미아저씨였지만 백두산을 넘어 천지를 날던 이야기를 할 땐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눈동자가 빛났다. 그 눈엔 가득 하늘이 담겨있었다.
거진 부딪쳤단 말야. 안개 사이로 느닷없이 벼랑이 튀어나오는데 이건 피할 방법이 없어. 딱 죽었구나... 근데 갑자기 바람이 밑에서 불어 올라오더니 비행기가 훅 위로 뒤집어지네. 엄청난 절벽에 부딪치지 않고 간신히 넘은 거지. 와아 진짜 그런 일은 내 평~생 첨이자 마지막이야. 백두산이 나를 살려준 거야.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모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대목이야말로 재미아저씨가 한국에 남은 이유였고 재미없는 재미아저씨 이야기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백두산의 신령한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고 있을 때 난 재미아저씨의 쌕쌕이가 떠올랐다. 색종이로 빨간 비행기를 접어 뒷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곤 벼랑에서 힘껏 날렸다. 그 비행기의 빛깔이 빨간색인지는 몰랐지만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을 그으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재미아저씨의 빨간비행기는 어린 나에게 단 하나뿐인 즐거움이었다.
나 말고도 재미아저씨의 비행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동석이는 재미아저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긴 꼭 비행기 조종사가 될 거라고 말했다. 자기도 재미아저씨처럼 비행기를 타고 저 하늘을 새처럼 날아다닐 거라고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며 산꼭대기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다. 꼭 조종사가 되자고.
02
그 어린 시절은 힘겹게 지나갔다. 공군사관학교를 가려던 계획은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두환 쿠데타 이후 군인의 길에 회의를 느껴 군복을 벗은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 군인을 직업으로 하는 걸 싫어하셨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고 부모님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장학금과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면서 비행기 조종사의 꿈은 현실 속에 점점 파묻혔다.
취업에 좋다는 알오티씨가 되어 군대를 마쳤다. 전역 후 오랜만에 고향을 찾으니 친구들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 의사 공부 한다더라. 누군 결혼해서 아이도 있다더라. 동석이는 공군사관학교를 갔다고 했다. 아마 지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녀석은 꿈을 잊지도 잃지도 않았던 거였다. 나만 배신자가 된 기분이 무척 씁쓸했다.
서울의 한 금융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10년 동안 숨도 못 쉴만큼 바쁜 직장생활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난 동석이가 부러웠다. 금융위기가 들이닥칠 때마다 회사는 구조조정 명목으로 직원들을 물갈이 했다. 명퇴라는 정체 모를 정년이 정기적으로 직원들의 숨통을 졸랐다. 나 역시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느냐 밀려나느냐의 압박감으로 쉴새없이 시달렸다. 결혼을 할 뻔 했지만 불명확한 미래를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 헤어지게 되었다. 집에서는 결혼 하기를 바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엔 누가 될까.
다시 금융위기라고 떠벌이는 언론을 접한 동료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젠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내 입에서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어느새 동기 중에 남은 친구는 이 친구와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도 그들도 서로가 서먹서먹해서 연락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누군 남고 누군 가고. 사회가 아무리 치열한 경쟁이라고 해도 결국 모든 짐은 남은 사람 몫이고 그건 자부심도 자신감도 상실한 회의감과 모멸감의 집약체이고 결정체였다.
못 해먹으면 명퇴해야지. 그 참에 못 이룬 꿈도 이루고 말야. 난 유럽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놈의 마누라와 애만 없었다면... 아마.
동기가 내뱉은 푸념에 나는 에디슨의 머리에 뜬 것처럼 전구가 반짝이는 걸 느꼈다. 꿈... 잃어버린 꿈, 잊어버린 약속.
03
다음 날, 명퇴를 신청했다. 조건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퇴직금에 명퇴위로금 포함 2억 5천.
예금을 합하니 해볼만 한 돈이 쥐어졌다. 버틴다. 꿈을 향해 가자. 잊은 게 아니라 잠든 약속, 잃은 게 아니라 침몰했던 꿈을 인양하기에 충분하다. 비행학교를 알아보았다. 36의 나이는 다행히도 커트라인이었다. 비행학교에서 입학허가서가 날아올 때까지 마음 놓고 기다릴 처지가 아닌 나이였다.
매일 메일함을 체크했다. 소식 없는 날이 늘어갈 때마다 초조함과 긴장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맥주 한 모금 입에 댈 수 없었다. 혹시나 체력검사에서 아웃될까 싶어서였다. 자포자기할 무렵 메일이 도착했다. 입학을 허가한다는 메일. 캘리포니아 비행학교에서 동석이를 만난 건 예정된 일일지도 몰랐다. 동석이는 의무복무를 마치고 그곳에 도착해있었다. 은퇴한 공군조종사들의 레귤러 코스. 동석이도 나도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꿈과의 조우, 약속을 이루기 위한 포옹,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하늘에 긴 고함을 질렀다. 가자, 꿈으로.
04
2000시간 비행, 몇 년을 날아야 채울 수 있는 조건일까. 동석이는 이미 갖추었다지만 나는 이제부터였다. 기회만 되면 조종석에 올라탔다. 날고 날고 또 날았다. 갖고 온 돈이 간당간당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면서도 마음은 늘 바닥인 잔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동석이가 뒤에 앉아 나를 채찍질했다. 그랬다. 우리에겐 같은 목표가 있었다. 재미아저씨의 그곳, 바로 백두산. 현실적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꿈이란 어차피 현실에선 해석이 안 되는 판타지다. 동석이와 난 그 꿈을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빨간비행기의 꿈을. 동석이는 이미 자격을 딴 상태로 떠나지 않고 내 뒤에서 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자격 조건을 채웠다. 그것도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꿈이란 참 신기하고도 못된 놈이라 사람을 초주검으로 만들고서야 만족한다.
축하해
고맙다
우린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에 조금 더 다가선 것이다.
넌 얼마 남았니?
괜찮아. 넌?
난, 난 바닥이야. 뭐든 해서 돈을 만들어야 돼. 이젠.
동석이는 자금이 아직 있다고 했다. 연금 나오는 것도 있었고. 나만큼 오랜 시간을 버티지 않아도 되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제 곧 바닥을 찍는다. 패스는 했지만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꿈에 돈 따위가 장애가 되다니... 라지만 어른들에겐 일반적인 이야기다.
국적을 바꿔야한다면 그럴 수 있겠니?
아 좋아. 정 떨어진지 오래다. 지긋지긋한 거기는.
동석이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뚜껑을 비틀어 따고 병을 마주쳤다. 꿈을 위해.
05
중국?
그래.
받아는 주나?
자격이 있으니까.
이미 말했지? 난 좋다고.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했다. 동석이와 난 민항기 조종사를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베테랑이 되기 위해 그렇게 날고 날고 또 날았던 거다. 우리는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귀화신청을 했다. 몇 주후 신청은 받아들여지고 우린 장백산 인근에 관광비행사를 냈다.
빨간 비행기 두 대가 격납고에 나란히 서있었다. 중고로 구입한 거지만 동석이와 난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우와
동석이도 나도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뒤지고 뒤져서 구입한 중고 비행기, 그 비행기에 빨간 페인트를 칠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비행기는 힘찬 몸짓으로 푸르릉거렸다.
장백산을 비행기로 관광하는 코스를 신청해서 허가를 냈다.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장백산 관광을 육성하는 정책을 폈기에 장백산이 인기 있는 관광코스가 된 탓이다. 장백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역시나 하늘이 최고의 관람석이었다. 비싼 가격에도 관광객들은 빨간 비행기로 하얗고 파란 천지를 날아다니는 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돈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 장백산을 날아다니는 일은 허세이고 과시 같은 거였다. 두 대로 시작한 비행기가 몇 년 후 열 대가 되었다.
비시즌이면 우리는 가끔 장백산, 아니 백두를 날았다. 빨간 비행기를 타고 천지를 넘어 북한의 상공을 넘나들기도 했다. 국경선을 타고 나는 비행은 스릴 넘쳤다...라지만 사실 긴장감도 없었다. 우린 이미 양쪽 모두 친해져서 선 타기의 위험부담을 없애버린 것이다. 돈도 좀 들었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백두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06
비시즌이 이렇게 맑은 하늘을 대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동석이도 나도 남은 건 시간이고 여유였으니 당연히 우리가 좋아하는 백두비행을 나섰다.
조종간은 내가 잡았고 동석이가 옆자리에 앉았다. 프루룹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며 빨간 비행기의 이륙을 재촉했다. 파아란 하늘의 빨간 비행기. 이거다. 꿈의 실체가,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어느 날보다 하늘은 푸르렀고 비행기는 빨갛게 빛났다. 몇 분 후 우리는 천지 상공에 도달했다. 양측 경계선의 관제사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천지의 싯푸른 물을 마음껏 감상했다.
동석아 재미아저씨의 천지가 이랬을까.
내가 오랜만에 재미아저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동석이의 눈도 아련해졌다.
아마 그랬지 않을까. 이만큼의 매력이 없었다면 앞에 있는 봉우리를 못 보는 일도 없었겠지.
저 멀리 백두의 최고봉이 우뚝 솟아있었다.
장군봉
해발 2744미터의 병사봉으로 불리다가 2750미터의 장군봉으로 바뀐 백두대간의 으뜸. 우리 빨간 비행기가 그 장군봉을 타고 날아오른다. 재미아저씨는 장군봉에 먹힐 뻔했지만 백두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 장군봉을 타고 마음껏 날아올랐다. 장군봉의 밑에서 말려올라온 바람이 속도보다 빠르게 빨간 비행기를 밀어올려주었다.
우와~
우와~
프룹프룹프루루루루루루
빨간 비행기가 파아란 백두의 하늘에 하얀 연기를 남기며 날아올았다. 꿈은 잊는 것이 아니라 잇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