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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Sep 11. 2023

잠(JAM)2

SF 장편소설

2. 불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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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가 끝나자 함선 전면부의 스페이스 캐논 사출구로부터 쐐기 같은 빛줄기가 별을 향해 쏘아졌다. 주린이 띄운 모니터에는 가스층의 표면에 백색 열기로 타오르는 거대한 별이 보이고 그 중심부에 투사된 검은 구체가 일렁이는 모습이 비추어졌다. 발사된 빛의 중심부에는 지우개라고 불리는 본체가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외부와 에너지를 채운 내부의 사이 공간에는 작은 볼들이 에너지를 공급받아 어마어마한 속도로 파괴력을 높이는 회전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함선으로부터 별까지 거리가 기록되고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예상 경로에 맞게 형성된 궤적으로 별을 향해 나아가는 빛줄기는 갈수록 거세졌다. 농밀하게 축적된 에너지의 힘이 막대를 그리며 차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가 멀어질수록 강해지는 그건, 까만 암흑을 일직선으로 꿰뚫는 불줄기였다. 이윽고 목표지점에 도착한 빛줄기가 소리 없이 폭발했다.


불꽃놀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빛의 페스티벌이고 소멸이라면 어마어마한 빛의 소멸이 진공의 암흑 공간을 가득 채웠다. 기주의 광대뼈로 붉은빛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함선은 불줄기를 맞이하는 별과 유효 사거리가 설정된 스페이스 캐논의 작동 구간만큼 멀어 그 폭발은 환상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기주는 이룬과 함께 지우마스를 앞두고 재현된 옛 지구식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었다. 빛이 아닌 불의 축제. 이룬과 강변에 서서 바라본 송년 불꽃놀이는 밤하늘의 매캐한 화약 연기와 냄새 사이로 찬란한 불의 꽃송이들을 수도 없이 암흑의 하늘로 피워냈다. 오래전 구식무기인 화약을 복원해서 재현한 불의 축제라고 했다.


기주의 고글에 백색 섬광이 크게 원을 만들고 시야 가득 확산되다가 점차 사그라지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기주가 시선을 창밖에 둔 채로 말했다.

 

- 이번 별이 몇 번째지.

기억 못하는 걸 억지로 떠올릴 필요는 없어요.


스으으으읏

미세한 기척이 트트트트틋 트트트트 하며 안전거리까지 물러난 함선 외부를 기어코 건드리고 지나가는 소리가 함 내로 이어졌다.


- 저기 저 별에 의지한 생명체가 있다면… 분명히 있겠지?

보고서에는… 저 항성계 딸림별의 생명체는 모두 소멸된 상태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 그거야 뭐, 꾸미기 나름 아닌가.

우리가 거기까지 알 수는 없어요. 그저 지목된 별이 자연 폭발하기 전에 소멸시키는 것뿐.

- 너무 매정해. 우리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잊은 거 같아.

하지만 그냥 놔두면 신연방 은하 신연방이 또다시 큰 피해를 봐요.

- 인간이 살자고 거기 무엇인지, 얼마인지도 모를 생명을 온통 소멸시킨다고?

놔둬도 어차피 딸림별들은 저 별에 휘말려 들어가서 소멸했을 거예요.

-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스스로 그렇게 될 때까지 놔둬야 하는 거 아닌가? 만약 저 태양계의 어느 별에선 옛 지구처럼 마지막 탈출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아니 어쩌면 막 초읽기가 끝나고 있었다면? 인간이 뭐라고 그 가능성을 말살하는 걸까?

우리는, 신이 아니에요. 기주.

- 신이 아니라면서,


기주가 잠자코 있다가 주린 쪽을 돌아보며 툭 던졌다.


-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는 건 아니야?


선체를 스치는 파편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처럼 계속되었다.


트트트트트틋 트트트트트트


- 저 가운데 어떤 삶이 지나가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주린이 대답했다.


항성이 파괴되면 어떤 꽃은 얼음꽃이 되어 부서지고 어떤 풀씨는 가능성을 몰수당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지겠죠.


- 시인이냐. 너?


기주는 이 잔재들이 죽음의 찌꺼기가 되어 선체에 들러붙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린은 뒤에 남은 딸림별들을 향해 다시 스페이스 캐논을 쏘았다. 아홉 개의 혹성들이 차례로 폭발해 사라졌다.


기주. 커피 마실래요?

- 그래. 마시자.


주린의 지시에 따라 로봇이 기주의 커피를 만들어 날랐다. 진한 커피 향이 선체를 스치는 소리에 어울려 잔잔하게 퍼졌다. 그날, 먼 우주 어느 태양계는 태양을 잃었고 온통 폭발하여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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