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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Sep 11. 2023

잠(JAM)3

sf 장편소설

3. 남겨지는 것들


기주? 기주? 기주…


이룬은 기주가 떠나고 눈앞에 닥친 어둠을, 그 편견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이룬은 끝까지 기주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 저 애라며?

- 정말?

- 그래! 재미로 잡았다잖아

- 아 그래서 남편 될 남자가 신연방에…

- 그래. 그거지. 남편을 망친 거지.

- 세상에나… 어쩜 그래.


- 아니! 아니에요! 그건 사고였다고! 사고야!


이룬이 수군거리던 22커뮤니티의 여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려니 하고 넘겼는데 오늘 저들은 차가운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고 늘어졌다. 말 하나하나가 차갑게 빛나던 하이에나의 이빨 같았다. 하이에나를 죽인 건, 사고였다. 기주가 이룬을 지키려고 한 거지만 이룬은 살고 기주는 벌을 받아 떠났다.


* * *


며칠 후 신연방 관리자와 22커뮤니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기주의 옷과 물품, 편지를 건네고 기주가 훈련을 잘 견디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무슨 훈련이 견뎌야만 하는 거야. 그런 훈련이 어디 있어. 그건 고문이지. 이룬은 고통스러운 기주의 신음이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 우주가 그렇게 커요?

- 몰랐어? 태양계와 태양계를 건너 옮겨 다니는 일이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야? 가장 가까운 태양계도 수면 없이 간다면 우주력으로 7~8년이 걸린다는데.

- 세상에. 그럼 다음 태양계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 세대를 맞이하겠네요.

- 당연하지.


관리자가 떠나고 멍하니 앉아있던 이룬이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다가 중얼거렸다.


- 우주력으로 7~8년…


이룬은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생각이야. 지금은 오직 생각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어. 이룬이 기주의 옷가지를 손에 잡고 드는 순간 사이에서 끼어있는 메시지 패드를 발견했다. 패드에는 광고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대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기회를 거부하는가?


* * *


다음 날, 이룬은 관리자 사무실을 찾아왔다.


- 사실인가요? 신연방 태양계를 건너는데 한 세대가 지난다는 말이?

- 그건…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비슷하긴 합니다.

- 그럼 기주는 살아서 돌아오나요?

- 물론입니다. 문제만 없다면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관리자의 말에 이룬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행이야.


- 다만….

- 네?

- 돌아오면 우린 더 이상 이곳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 그게 무슨 뜻인가요?

- 조종사들은 수면 항해를 합니다.

- 수면 항해라니요. 자면서 움직인다는 건가요?

- 맞아요. 그들은 항성계와 항성계 사이를 이동하며 긴 시간 잠을 잡니다.

- 자더라도요. 나이는 먹지 않나요?


이룬이 심란한 눈으로 관리자를 바라보았다. 관리자가 이룬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임무가 끝날 때까지 조종사는 생존해야만 합니다. 그게 신연방의 법이에요.

- 어떻게요? 어떻게 살아있죠?

- 수면 항해 중, 신체의 모든 움직임이 거의 멈춘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 나이를 먹어도 몸은 거의 그대로라는 건가요?

- 예를 들어 우리가 십 년을 사는 동안 조종사는 일 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겁니다.

- 우리가 백 살이 되면 기주의 삶은 겨우 십 년이 지난다는 거예요?

- 거의, 거의 그래요. 조종사의 숙명이에요. 돌아온 지구에 가족이나 지인은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걸 사전에 모두 알고 떠나는 거죠.

- 알고 떠나요? 그럼 우리는요?

- 우린… 순리대로 나이 들고 늙어 자연으로 돌아가야죠.


절망한 이룬의 눈에 메시지 패드의 글이 보였다.


혼자 두려는가요. 당신은?

별 지우개 프로젝트는 가족과 함께하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지금 바로 가까운 관리자에게 연락하세요.


진한 녹색 건물은 신연방 어디를 가도 메디컬 디렉터가 근무하는 건물이다. 야트막한 녹색 건물 몇 개가 늘어선 거리에서 그중 하나의 건물을 나선 이룬이 텅 빈 눈으로 거리를 걸었다.


- 180일 정도 남았어요.

- 180일이요?

- 앞, 뒤로 10일 정도 오차는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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