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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Sep 13. 2023

잠(JAM)5

SF 장편소설

5. 손톱


기주. 일어나요. 도착했어요. 기주우~ 일어나요. 응?

- 제발 주린! 이룬 목소리는 하지…


기주가 눈을 뜨며 못마땅하게 말했다.


아, 미안해요. 기주.


기주가 뭔가 더 입을 열려다가 말고 손가락 끝을 더듬었다.


뭐…해요?

- 몇 시간 후에 보급기지 도착한다고 했지?

19시간이 지났어요.

- 19시간. 그래.

준비는 끝났어요. 기주. 착륙선을 내려보낼게요.


주린이 착륙선을 투하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착륙선은 스스로 보급기지를 찾아가 로봇을 풀어 물품을 채워올 것이다. 연료, 식량, 그리고 신의 무기를 위해 충전된 에너지 부스터.


- 나도 간다.

네?

- 땅을 밟아본 지 너무 오래됐어.

위험해요. 기주. 보급기지는 환경이 지구와 달라요. 비라도 내리면 몇 분 안에 우주복이 녹아버릴 거예요. 더구나 아주 일부 지역만 통제할 수 있어요. 나머지는 미지의,

- 주린이 지켜줄 수 있잖아.


후우, 탄식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 에어 록이 작동하는 소리가 기주가 듣기에 마치 탄식처럼 들렸던 것이리라. 잠시 후 주린이 말했다.


좋아요. 준비해요.


쉬잉, 그사이 착륙선 쪽의 도크가 열렸다. 기주가 콘트롤 데크의 문을 나서자 위에서 우주복이 내려왔다. 기주가 착륙선 조종석에 앉아 기다리자 에어 록이 작동하고 착륙선이 함선을 떠나 곧바로 보급기지로 하강했다. 내려가는 동안 주린의 주의사항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명심해요. 이곳의 기후나 환경은 지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소 분포도가 절반도 안 돼요. 우주복에서 벗어나는 순간 천천히 질식이 시작될 거예요.


기주는 주린이 있는 모선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린은 우주복에 장착된 캠으로 기주를 보고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착륙선이 지면에 내려앉자 캐리어 로봇들이 보급기지 창고에서 필요 물품을 나르기 시작했다. 기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향과 똑같은 모습. 풀도 나무도 흙도 똑같은 모습이다. 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우주복 신발 바닥 때문에 느리고 둔했지만, 그 느낌은 생생하게 온몸에 전해졌다. 훅훅 훅훅 키릭 키릭 키릭, 기주의 우주복엔 구명 케이블이 연결되어 착륙선에서 일정 거리 이상은 벗어날 수 없었다. 팔을 뒤로 돌려 줄을 잡아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케이블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기주!


곧바로 주린의 잔소리가 돌아왔다. 기주가 하늘을 흘깃 보고는 옆에 있던 평평한 돌 위에 주저앉았다.


- 주린.

말해요. 기주.

- 연락 온 거 없어?


* * *


이룬은 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신연방은 인구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많이 펼쳤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금액과 집 그리고 세제 혜택으로 안정적인 졍착을 보조했다. 일반인으로 지구 탈출 모선에 탑승해 우주를 떠돌며 2세대, 혹은 3~4세대로 새로운 별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정밀하게 나눠진 특성 표에 맞게 직업 코드를 부여받았다. 누구는 농부로 누구는 목수로, 연구원으로, 교사로 직업 코드를 받아 생활에 필요한 경제 활동을 했다. 보통은 일생에 한 번 검사하여 직업 코드가 부여됐지만, 부모의 직업 코드 세습을 원하지 않는 자녀는 절차를 밟아 바꿀 수도 있도록 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평범한 인간들은 신연방을 경영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신연방을 경영하는 엘리트 코드 역시 세습으로 그 지위를 누렸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주어진 특수한 사명보다는 삶을 즐기려는 습성이 늘어가고 출산을 꺼리는 풍조가 생겨 엘리트 그룹을 이루는 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신연방과 단체의 최고위 통치자는 시민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지만, 지배그룹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은 점점 더 사람이 부족해지고 결국 일반 코드에서 선별 입양하여 인력 부족을 해소하게 되었다. 입양된 아이는 엘리트 그룹이 되어 행정 법률 교육 경제 등 핵심 분야에서 신연방을 경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이룬님이 수면 캡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아기는 영양관 튜브로 성장합니다.


아기는 수면 중인 엄마의 태중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다 자라면 분만 유도를 통해 세상에 나올 거라고 했다.


- 아기는 엘리트 교육 과정으로 브레인 시스템이 주입되고 태어나면 엘리트 그룹의 부모에게 입양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특히 이 코드 전환은 아기가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면 그 가족들에게 같이 적용되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제한 없이 이어집니다.

-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이룬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눈물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이룬의 부모는 목축 코드를 부여받았다. 이룬의 목장 근처에서 하이에나에게 먹힐 뻔하다가 이룬과 아빠 진에 의해 목숨을 구한 기주는 모든 기억을 잃고 이룬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어느 날 신연방에서 관리하는 사파리의 울타리를 뚫고 하이에나들이 목장 주변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영악한 하이에나들은 사냥이 쉬운 양과 염소 같은 가축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하이에나로 인해 잦은 피해를 본 기주와 이룬은 커뮤니티 행정부에 하소연했지만, 행정부에서도 다른 일이 급하다며 처리를 미루었는데 결국 이룬이 하이에나에게 습격당하고 말았다. 그 순간을 떠올린 이룬이 몸서리를 쳤다.


* * *


잠시만요.라는 주린의 말이 들리고 몇 분이 흘렀다. 기주는 지나온 시간보다 그 몇 분이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 왔어요. 이룬으로부터.

- 읽어줘.


그리운 기주. 나는 잘 있어요.

십 년의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마침내 흘러갔군요.

조금만 더 견디면 기주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떨려요.

아, 얼마 전에 우리가 살 집을 구했어요.

작고 아담하지만 따뜻하고 아늑해요.

남은 몇 달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요.

당신의 이룬으로부터.


기주는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우주복이 가늘게 떨렸다. 보급기지에 도착할 때마다 이룬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렸지만, 메시지가 도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별 지우개를 위한 보급이 이루어졌고 아홉 번의 보급을 받았다. 아홉 번째 만에 마침내 이룬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기주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주린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룬은 잘 있군요. 다행이에요.

- 집을 구했다고? 아무튼 그래 다행이야. 그런데 주린. 궁금한 게 있어. 19시간 만에 인간의 손톱이 얼마나 자랄 수 있지?

무슨… 뜻이에요?

- 지난 임무 후 여기까지 19시간이 지났다고 했지.

그래요. 19시간이 지났어요.

- 손톱이 19시간 만에 두 배로 자라는 게 정상인가? 잠들기 전에 손톱을 깎았어. 지구에서 살 때는 3주마다 손톱을 깎아야 했지. 그 정도 시간이 흘러야 깎을 만큼 자랐거든. 그런데 임무가 시작된 후로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손톱이 깎을 시기가 훨씬 지나고 또 지날 만큼 자라있었어. 불과 2일 혹은 3일을 잤을 뿐인데 말야. 주린. 이상하지 않아?

아, 그건… 수면 항해로 몸이 영향받은 게 아닐까요.

- 잠든 사이에 내 몸이 변했다…. 그게 최선의 대답이야?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어요. 요즘은 기주의 신체 데이터 체크 주기를 전보단 늦추고 있어요. 그동안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 일상 체크 말고 정밀검사를 한번 해보기로 해요.


기주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 주린. 우리 솔직하자. 이제 거의 다 끝났잖아. 지난 임무 때, 소멸시킨 별의 딸림별에서 보낸 메시지가 있는 거 알았지?

메시지라니요. 그런 거 없었어요.

- 살려달라는, 우주 공통의 구난신호. 별이 파괴되고 흩어지는 동안 딸림별에서 보내진… 그 메시지를 보낸 누군가는 살아있었어. 생명체가 없다는 주린의 말과 달리 누군가는 분명 살아있었다고. 나는, 우리는 악마가 된 거야. 주린. 그동안 생명을 말살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다닌 거라고.

그 신호를 들었군요. 이렇게 됐으니 솔직히 말할게요. 기주. 하나가 아니었어요.


주린의 대답은 기주의 귀에 닿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말, 하나가 아니었다는 말만이 기주에게 들렸다.


* * *


별 지우개 프로젝트는 서기 2263년에 시작된다.


많은 학자가 50억 년은 문제없을 거로 예측했던 태양계에서 태양의 이상 징후를 알게 된 건 한 민간 기업에서 발사한 태양 관측 위성이 초 단위로 발신하는 태양의 데이터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수년간 연구한 학자 때문이었다.


태양의 팽창으로 지구가 파멸하기 전에 10여 년간 준비를 마치고 결국 지구를 탈출한 인류는 정착할 별을 찾아 끝없는 우주를 유랑하다가 마침내 50여 년 후인 2153년 지구와 유사한 별을 찾아 신연방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260년,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으로 얻은 과학기술과 무기 체계를 바탕으로 신연방은 주변의 행성에서 멀게는 인접 은하까지 점령하여 식민지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식민지 지배를 위한 항로를 개척하여 행성 간 워프 터널을 건설한 신연방에 어느 날 큰 사고가 발생했다. 2259년 12월에 터널 주변에 존재했던 별이 폭발하면서 터널 일부까지 휘말리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천문학적인 돈과 수많은 인명이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태양의 폭발로 지구에서 탈출해야 했던 인류의 무의식 속에는 별의 폭발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신연방 정부는 터널 소멸 사고로 패닉에 빠진 시민들의 불안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고 기업 연합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여 신연방이 지배하는 은하의 상태를 미리 감시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상 징후가 보이는 별을 사전에 제거하는 계획이었는데, 그것을 별 지우개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신연방 은하 신연방 대부분 시민은 이런 프로젝트를 몰랐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이 항성 파괴용 스페이스 캐논을 장착한 함선, 별 지우개 함들은 3년간 훈련받은 조종사 지원자 1인과, 인간을 시스템에 인스톨한 휴머노이드 시스템을 탑재하여 먼 우주로 떠났다.


이 작전에 지원한 사람 각자가 말 못 할 사연을 안고 십 년 계약의 별 지우개 조종사로 머나먼 항해를 떠나게 된다. 신연방의 모든 우주선은 반드시 인간 조종사가 탑승해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을 시스템 네트워크에 인스톨하는 휴머노이드는 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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