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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Sep 14. 2023

잠(JAM)7

SF 장편소설

7. 기억의 온도


목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룬은 비에사가 말한 그 낙원을 평생 경험해보지 못 하리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꼈다.


- 그 낙원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겠죠?


관리자가 이룬을 보다가 그 부분에서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요. 근심과 걱정이 없는 파라다이스. 조종사 지원자들은 임무를 마치면 그 가족의 후손들과 함께 파라다이스에서 평생을 살 겁니다. 하지만 이룬, 이룬은 그보다 더 큰 혜택을 받게 될 거예요. 이런 일은 누구도 경험해볼 수 없는 특별한 혜택입니다.


이룬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놀 사이로 3개의 달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22커뮤니티에는 고층 빌딩이 없어 놀은 반구의 형태로 천공을 띠처럼 둘러 땅으로 향하고 그 사이로 떠오르는 세 개의 달도 놀에 휩싸여 벨벳을 두른 여신처럼 그림자를 그리며 이룬을 따라왔다. 비행정이 고요한 밤하늘에 하얀 자취를 새기며 이룬의 목장으로 향했다.


목장에 도착한 비행정이 이룬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이룬은 콘트롤 패널을 열어 관리 로봇을 불렀다. 잠시 후 목장 어딘가에서 이룬 대신 양을 돌보던 로봇이 궤도차를 타고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룬님.

- 그래. 진. 별일 없지?

네. 이룬님, 프로토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 좋아.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해.

네. 대기 중입니다.

- 나는 이제 여행을 떠날 거야. 아마도 아주 오래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거야.

- 그동안 진이 주인이 되어 이곳을 돌봐야 해. 이제 그 내용을 하나하나 일러줄게. 첫째는 양들의 사료 공급에 관한 프로토콜이야. 시스템 접속-사료 코드는 9, 6, 9-사료 주문 및 결제-배송, 다음은 번식을 위한 프로토콜, 시스템 접속-번식 코드는…


이미 목축 코드 로봇으로 프로그래밍 된 내용이었지만 패밀리 로봇 진은 가끔 응답하며 이룬의 지시를 그대로 기록했다. 이룬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밤새 들릴 것처럼 이어졌다. 신연방의 하늘에 뜬 3개의 달이 기우는 동안 새벽이 조금씩 목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 * *


이룬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이룬이 모르는 사이 이룬의 시신경에 장착한 나노캠이 이룬을 따라 방의 모든 것을 녹화했다. 그 영상은 가끔 뿌옇게 흐려지고는 했다. 이룬의 눈이 기주의 사진에 가 닿았다. 지적으로 생긴 얼굴이란다.


- 못생긴 편은 아니지.


못생겼다고 이룬이 놀리면 기주는 늘 이렇게 항의했다. 기주를 떠올린 이룬의 입 끝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 도무지 뭘 준비해야 할지…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이룬은 무작정 다시 돌아올 일을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이별은 언제나 처음이라 어렵다.


마리에를 불렀다. 마리에는 이룬에게 신연방에서 진과 함께 제공한 가사 로봇이었다. 마리에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룬은 기주가 함께하면서부터 마리에, 진과 살았다. 로봇 진은 아빠의 이름과 성격을, 로봇 마리에는 엄마의 이름을 부여하고 성격을 심었다. 아빠는 다소 급한 성격으로 부지런하며 신중했고 엄마는 부드러운 성정을 지닌 여성이었다. 마리에는 어떤 일에서도 서두르지 않는 엄마를 닮아 모든 행동에 여유가 있었다. 주인의 정서에 동화되는 패밀리 로봇인 마리에는 이룬에게 다가오면서 이룬의 슬픔에 물들었다. 마리에는 슬픈 모습으로 이룬을 안아주었다.


* * *


지구를 탈출한 인간들은 새로운 은하계에 정착하면서 옛 지구에서 버려야 했던 유산들은 가져오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목적만이 강조된 A.I가 움직임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사살하고 누른 핵 버튼에 핵으로 맞대응한 적성국 A.I로 인해 양측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본 인간들은 신연방에서는 로봇의 단독 행동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시스템에 인간이 관여해야 한다는 조항은 신연방기본헌법 제2조에 명시될 만큼 중요한 이슈였다. 90억 지구인 중 탈출에 성공한 인간은 불과 2만 5천여 명. A.I를 경계한 신연방에서마저 로봇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이었다. 결국 필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한 로봇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수준까지 근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봇에게 의존하는 분야가 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지능적인 로봇들이 개발되자 지도자들은 로봇에게 알고리듬에 의한 판단력이 주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원칙을 뒤집는 로봇이 등장할 거라는 A.I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봇을 운용하는 모든 현장엔 반드시 인간이 책임자로 통제하도록 하였으며, 인간 또한 로봇에 대한 차별적 언행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규정을 어기면 궤도에 정착된 세 개의 달 중 하나에서 긴 시간 노역하는 엄한 벌을 받게 하였다.


집에 오는 동안 이룬을 따라온 세 개의 달은 거대한 세 개의 위성이었다. 우주를 유랑하던 탈출 모선에서 정착할 별을 찾아 탐색을 떠난 20여 탐색선 중 하나가 지구와 환경 조건이 가장 유사한 별을 발견했다. 다만 이 별에는 달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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