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잠JA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요일 Sep 15. 2023

잠(JAM)8

SF 장편소설

8.이별의 습도


달을 만들자.


수만 년 동안 옛 지구에 맞춰 진화한 인류가 지구와 다른 환경에 처했을 때, 원주 생물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 지도자들은 발견된 별의 환경을 가능한 옛 지구와 유사하게 하려고 했다. 그 방법으로 선발대가 먼저 와서 모선이 그 별에 도착하기 전 거대 위성을 만들어 달의 궤도에 올린 것이다.


옛 지구의 세 배 크기에 달하는 새로운 정착지에 썰물과 밀물이 있는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개의 달이 필요했다. 크기는 옛 지구의 달보다 작았지만 크기와 질량을 산출하고 사이의 위치와 각도까지 계산하여 인력을 조절한 세 개의 달이 차례로 궤도에 진입한 얼마 후 마침내 거대 모선이 새로운 땅에 내려왔다.


지구 대탈출 후 부모가 죽거나 혹은 그 아이들이 죽고 우주 2~4세대인 신인류가 마침내 새로운 땅에 내려선 것이다.


* * *


이룬이 마리에의 등을 두어 차례 토닥이고 말했다.


- 마리에, 나는 돌아오려면 무척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니 마리에가 집을 잘 돌봐줘. 혹시… 나는 못 돌아온다고 해도 기주가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안아주고 커피를 내려주고 아침을 만들어 줘. 내가 함께 있는 것처럼 기주를 지켜줘. 부탁해 마리에.

네, 이룬님. 그럴게요. 걱정 말고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 기주와 나 사이에 아기가 생겼어. 이름은 지우로 지었어. 지우가 집에 돌아오면 마리에가 엄마가 되어줘. 이 영상은 영구 보존해. 나중에 지우나 기주가 오면 재생하도록 해.

네, 저장했어요.


이룬이 다시 한번 마리에를 토닥여주었다. 그런 이룬을 마리에가 오랫동안 끌어안았다.


* * *


- 하나…가 아니라니?


이번 임무의 딸림별들에서 그 시간에 정확하게 감지된 생명체는 669조8천2백73억…라는 말은 기주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기주.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에요.

- 의미 없는 생명체가 어디 있어? 그럼 모든 임무에서 이랬던 거야?

기주.

-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우리는 왜 악마가 됐지?


스크린에서 기주의 고개가 천천히 숙였다. 주린이 그런 기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주가 머리를 무릎에 파묻는 영상이 보였다. 주린은 천천히 기주를 불렀다.


기주.


기주가 고개를 들어 모선 쪽을 보았다. 주린은 기주의 눈가에서 빛나는 눈물을 보았다.


기주. 어차피 그들은 살 수 없었어요. 별들은 모두 폭발해 블랙홀로 바뀔 테고 폭발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생명체는 사멸될 거였어요.

- 주린. 그들은 다만 며칠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었어. 그 며칠 만에 그곳을 탈출할 수도 있었어. 지구인들이 태양계를 탈출했듯이 말이야.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 며칠을 그들에게서 빼앗은 거냐고. 어쩌면 그들은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소멸했을 거야. 우리가 그랬어.

기주.


기주에게 들리지 않는 주린의 중얼거림이 텅 빈 콘트롤 데크를 울렸다.


며칠이 아니에요. 기주. 별이 소멸하기까지 그들의 시간으로는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몇천 년일지도. 그동안 빠르게 혹은 느리게 사라질 거예요. 우리가 말살한 생명체 숫자는 인간의 숫자로는 셀 수조차 없어요.


- 돌아가면 아는 사람이 남아있기는 할까? 얼마 전부터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어.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가는지.

기주

-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의 시간은 멈추고 모든 사람은 내가 잠든 사이 나이 들고 사라지겠지.

기주

- 집을 구했다고? 이룬에게서 온 그 메시지… 거짓말이지? 이룬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 이룬이 살아있겠어?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 지났을 텐데. 이룬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어? 살아서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을까?


기주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돌에 부딪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우주복의 헬멧은 표면에 자잘한 흠집만 날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주린이 간절한 목소리로 기주를 불렀다.


기주. 그러지 말아요. 제발…


* * *


목장이 작고 작아져서 마침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려다보았다. 진과 마리에가 떠오르는 비행정을 향해 끝없이 손을 흔들었다. 피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거나 함께했다는 것만으로 이룬에게 그들은 너무나 따뜻했다. 사라져가는 그들에게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이룬, 잘 될 거예요.


관리자가 이룬에게 말을 건네자 이룬이 창밖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야죠. 그래야 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JAM)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