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IGE Mar 12. 2017

1이 아닌 2가 된 이야기

Prologue. I CAN 말고 WE CAN

엊그제까지 술 한잔 기울이며 자식의 교육 문제를 걱정하던 과장님이 정치적인 문제로 하루아침에 퇴직을 한 어느 날이, 비정규직 정규직의 중간에 서서 사회생활을 피곤하게 만드는 과정들이, 《미생》에 위로받는 하루하루가 쌓여갈수록 ‘나’란 사람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었다.

이력서에는 앞으로의 5년, 10년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라고 종용하지만, 내 5년과 10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 회사를 위한 나의 발전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의 답이 점점 줄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행복을 적금처럼 나중에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가서 행복해지자?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예요. 당장 행복해져야 하는 거죠.’


침이 고였다.
당장 행복해지고 싶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 글을 쓰고 싶다.

사회인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집을 사야 하고 그런 반복적 인상 황에 쫓겨 도피하지 않으면 휩쓸려 둥둥 떠다니는 나를 보며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곳에 가서 나를 위한 솔직한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꿈을 꿨던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단지, 지금 하고 싶었다.






오랜 연애를 한 그에게 말했다.
두서가 없었다. 솔직히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가 나를 놓는다 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내 문장들에는 두서가 없었다.



영화 관람 1시간 전이었고 그저 우리는 여느 날과 같이 커피를 마시고 마주 앉았다. 머그컵 언저리를 하염없이 만지다 뚝뚝하게 말을 뱉고 말았다.


‘나 캐나다에 가야 할 것 같아’


어떤 목소리였을까. 아마 쇳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내 문장보다는 내 목소리에 놀란 것을 아니었을까 캐나다라는 단어보다 내 쇳소리가 더 먼저 그에 귀에 닿았을 것 같다. 오래도록 그는 말이 없었고 ㅡ아니, 실은 몹시도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ㅡ 나도 오래도록 말하지 않았다. 아마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우리의 침묵을 깼다.



‘그럼 같이 가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사회생활 6년 차 여권도 아직 없는 그에게 나온 대답이라니, 그는 캐나다가 어딘지 알고 말하는 것인지. 부산을 가겠다 제주도를 가겠다 한 것도 아닌데 ‘그럼 같이 가자’라니?



지금에 와서야 웃으며 말하는데 그때 그는 정말 놀랐다고 한다. 대학시절에 종종 ‘나는 나중에 외국 가서 1년 정도 살 거야’ 했을 때는 ‘네가 취업하고 살아봐라, 그게 그리 쉽나’ 했었단다. 그런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을 간다고 하니 처음에는 놀랐지만 ‘올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보다 그는 상황판단이 쉬웠다. 같이 가지 못하면 헤어지는 것, 헤어지기 싫으니 그럼 같이 가야지.


그의 빠른 결정이 나의 결심에 속도를 붙였다.


‘계획만큼 웃긴 것도 없습니다. 계획한 대로 될 리는 없어요. 행복하게 닥치는 대로 살아요. 졸라 짧아요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