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한국소설

by sagak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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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으며 나는 문장 위에서 흔들거리는 사람들과 마주한다. 벼랑 끝에 내몰려 술에 매달렸던 영경을 만나고, 식사 후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던 신예 소설가 ‘그녀’를 보기도 했다. 하나도 더 나을 것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해답 없는 결말만 내놓은 권여선 작가의 단편들을 보면서 나는 자꾸 갈증이 났다.


목이 마를수록 글들은 솔직해졌고 나는 자꾸 삼키듯 글을 읽어댔다.


자신이 겪는 불행이 무의미한 우연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으므로 어떤 식으로 건 납득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려고 하며 그 불행을 둘러싼 어떤 작은 우연도 혹은 필연은 아닐지 의심한다. 책임질 주제를 찾으려 하고, 끝내 찾을 수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이라도 피고석에 세운다.

(_245, 해설 |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ce)’에게 바치는 경의 ‘신형철’ )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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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소주를 입에 머금다가 목으로 넘길 때면 그 뜨거움이 닿는다.

뜨겁게 살아야 하는데 뜨겁게 살지 못해서, 뜨겁게 해내지 못해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이 가진 뜨거움을 기꺼이 받든다. 그래서 나는 술에 기대어 어제 하지 못한 말들을 입에 담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수화기 너머로 네게 전한다.


술에 힘입어 너에게 말들을 쏟아내자, 내게 닿았던 좋지 않은 결말까지 끄집어내고 만다.

‘운이 없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미리 알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순간들까지 다 내 몫으로 안고 가려고 애를 쓰다 우리는 자주 상대방에게 오해를 남긴다.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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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는 술과 닮았다. 어느 날은 잘 받고, 어느 날은 더럽게 안 받는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 날은 안쓰럽다가, 어느 날은 지랄 맞은 인생사라며 보기 싫기도 하다. 누군가의 불행을 엿보는 일은 나의 치졸한 속내를 들여다 보는 것 같아서 늘 개운하지 않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쉬어가는 템포를 찾기 바빴다.


생각이 참 많아지는 책이었는데 글로 옮기려니 여간 쉽지가 않다.

단편소설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 <안녕 주정뱅이>를 읽으며 단편집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꼈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형태로 이야기 하니, 마치 ‘당신의 궁금한 이야기’ 프로그램처럼 질리지도 않고 새로웠다.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결국, 덜 나은 삶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자기계발서보다 <안녕 주정뱅이>가 내게 주는 교훈이 더 많듯 결국 수 많은 마이너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 소주가 땡기는 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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