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온도는 몇 시간 만에도 드러난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묘하다. 익명이라는 얇은 막 하나에 가려 있을 뿐인데, 사람의 말투는 금방 드러나고 감정의 결은 서늘할 만큼 선명해진다.
얼마 전,
나는 타 플랫폼에서 작은 파문처럼 번지는 장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이가 글쓰기 세계를 둘로 나누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진짜 글쟁이”와 “그 반대 부류.”
그 전에는 브런치 작가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글을 올려서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하긴 했다.
단어만 보면 가벼운 농담일 수 있지만 그 문장 속에는 묘한 심판자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문장이 누군가를 들춰 올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려놓고 서열을 붙이는 듯한 느낌. 말은 가벼웠지만 그 말의 온도는 차가웠다.
나는 그 앞에서 아주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칼날도 없고, 의도도 없고, 그저 그 사람의 말의 출발점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그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서 온 걸까?가짜라는 말은 없었지만 '반대부류' 라는 말로 사유가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은 가짜 라는걸까? ” 라는 의문으로 질문하듯 물어봤다. 그리고 무 자르듯 가르지 말아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때 싸울 생각도, 논쟁을 키울 마음도 없었다. 그저 말의 결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질문 이후 상대의 말투가 놀랄 만큼 빠르게 변했다. 처음의 단정한 태도는 사라지고 갑자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창작자 전체를 비하한 게 아니다.”
"사유가 없는 일부 글에 비판 한거다."
“왜 그런 말에 너희가 찔려서 불편해 하는지 모르겠다.”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글을 왜 글 쓴이가 평가를 하고 비판을 하는지 이유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의 온도는 확실했다.
이 말은 해명이라기보다 흔들린 중심을 되찾기 위한 급한 방향 전환처럼 들렸다..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그런 뜻 아니었다”고 뒤로 물러서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느끼는 너의 문제”라며.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몇 시간 만에 모두 보여주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말의 깊이보다 말의 흔들림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걸 그날 새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적었다.
“ㅋㅋ 재밌네.”
그 말은 싸우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을 닫는 말이었다. 더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고, 상대를 다그칠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그저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내겠다는 작은 퇴장의 몸짓이었다.
그 한 줄 이후 상대의 반응은 뚝 끊겼다. 대화의 장면은 거기서 멈추었고 몇 시간 뒤,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이 올라왔다.
이번엔 ‘병원 스토리’였다. 몇 시간 전의 냉정한 말투는 사라지고 갑작스러운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글. 사유가 없이 감성에 호소하는 그런 글이었다. 그가 몇시간 전에 비판하던 사유없는 글을 본인이 쓴 것이었다.
고통과 위로, 상처와 선물. 그러나 그 글을 읽고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 고통에 비해… 선물이 고작 이거였어?”
그때 나는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를 구분하려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진심(?)을 '고작'으로 평가받는
이 아이러니한 장면 말이다.
결국 자신의 글 온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의 진심은,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작은 선물의 감동 조차 읽는 사람에게는 "고작"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모두는 안다. 위로의 크기는 가격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건네진 온도의 결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이 앞뒤가 안맞으면 그 어떤 글도 공감을 받을 수 없다는것을 배웠다. 그리고 말의 결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단 하루도 아닌, 몇 시간 만에도 사람의 온도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논쟁은 누구의 승리나 패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가 더 오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가로 조용히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도 혹시 앞뒤가 안맞는 행동을 한적은 없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것 같다.
내가 남긴
“재밌네.”
라는 한 줄은, 그 모든 대화를 조용히 닫아준 작은 마침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