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책과 커피의 조합

by 유블리안


일주일 내내 쏟아지는 메일과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던 회의들에 진이 빠져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자 휴무였다. 알람을 끄지 않아도 되는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집 근처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도서관은 늘 비슷한 풍경이었다. 조용한 사람들, 천천히 넘겨지는 종이책 소리,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까지. 그 안에 있으면 괜히 나까지 조용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료실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평소 좋아하던 역사책이었다. 조심스럽게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읽고 싶어서 집어든 건지, 그냥 손이 닿아서 선택한 건지는 몰라도 이상하게도 역사책은 언제나 나에게 조금은 단단한 무언가를 남긴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치열했던 기록을 가만히 한 자 한 자 더듬다 보면, 며칠 내내 나를 짓누르던 조급함과 답답함이 아주 가볍게 느껴지며 나를 지탱할 작은 용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를 넘겼을까, 문득 커피가 생각났다. 책을 대출하고 도서관 1층에 있는 북카페로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조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커피 가격도 부담 없었고 좋아하는 책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한 줄을 읽고, 잠깐 휴대폰을 보고 다시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 뿐인데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다.


보통의 휴무는 늦잠을 자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고, 다시 누워있는 하루에 가까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별거 아닌 하루였는데, 이상하게도 조금은 의미 있는 하루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도서관의 공기 속에서 역사책이 준 단단한 위로를 가만히 곱씹었다. 그렇게 책이 남긴 단단함은 오늘의 평온한 공기와 은은하게 섞여, 문장보다 더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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