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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21세기에서 무엇을 팔까?

데이터와 불안을 파고드는 현대판 풍자가의 귀환

by 유블리안
"허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 법.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데이터 속에 있다 하더군."


​"강물을 팔았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재치와 기지로 권력과 탐욕을 조롱했던 남자, 봉이 김선달. 그의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약자가 지혜로 강자를 이기는 짜릿한 교훈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난다면, 무엇을 팔고 있을까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더 이상 대동강 물문서가 아닐 겁니다. 아마도 최신형 태블릿 PC를 든 채,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사람들의 불안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겠죠.


[개인 맞춤형 마음 주파수를 팝니다]


​현대의 김선달은 가장 먼저 명상, 힐링 등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파고들 것입니다. 스스로를 '영혼의 조율사'라 칭하며, 최첨단 양자역학과 동양 철학을 결합했다는 기계로 사람들의 고유한 '마음 주파수'를 측정해 줍니다.
​그리고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진단 결과를 내놓겠죠.


​"쯧쯧, 당신의 성공 주파수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구려. 이대로 두면 재물운이 막힐 상이야. 하지만 걱정 마시오. 이 '디지털 부적'만 있으면 당신의 주파수를 황금 비율로 맞춰줄 터이니."


실체는 없지만, 그럴듯한 과학 용어와 심리적 안정감을 미끼로 '주파수 구독 서비스'를 판매합니다. 결국 그가 파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과 '위안'인 셈이죠.


['AI가 설계한 미래'를 컨설팅합니다]


그의 두 번째 사업은 빅데이터와 AI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신뢰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천기누설 AI'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데이터 기반 운세'나 'AI 미래 예측' 컨설팅을 시작합니다. ​SNS 계정과 몇 가지 개인정보만 입력하면, AI가 당신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해 준다고 홍보합니다.


"인간의 감으로 미래를 점치던 시대는 끝났소. 이 AI 도사가 데이터로 증명된 당신의 가장 빛나는 미래를 알려드리지. 자, '성공'과 '행복' 중 어느 경로로 최적화해 드릴까?"


​사실 그 결과는 미리 만들어둔 그럴듯한 문장들을 무작위로 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AI'와 '데이터'라는 말의 권위에 속아 기꺼이 자신의 미래를 구매합니다.


[사기꾼인가, 시대의 풍자가인가]


그렇다면 현대의 김선달은 그저 교활한 사기꾼에 불과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 비평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의 타깃은 언제나 맹목적인 믿음과 시대의 불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맹신하고,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포장된 허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그 기발함과 통쾌함에 혀를 내두르며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새로운 김선달이 파는 무형의 강물을 비싼 값을 치르며 마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믿고 있는 가치는, 정말 실체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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