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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07. 2019

엄마, 나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어

에티오피아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엄마, 나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어.


 출국 한 달을 앞두고 던진 첫마디였다. 엄마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넘기고, 아빠는 허허 웃어넘겼다. 고작 한 달을 앞둔 채 아프리카에 가겠다는 그 한마디는 마치 집 앞 슈퍼에 마실 다녀오겠다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엄마 아빠가 발칵 뒤집어진 건, 내가 합숙훈련을 가기 위해 2주 치 짐을 캐리어에 억지로 구겨 넣을 때였다.


 그제야 한 NGO단체에 지원서를 썼고, 어찌어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에 합격하고, 2주간 합숙훈련을 하고, 설날은 다행히(!) 한국에서 보내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고, 그래서 결국 3월 1일에 출국을 해서, 1년 간 아프리카에서 살 거라는 설명을 쏟아냈다.


 “왜 말 안 했어? 어디 1년이 그냥 말이 1년이니? 당장 졸업해서 취직해도 모자랄 판에.”


 합숙훈련 전 날까지 부모님과 날과 밤을 새우는 대화가 이어졌다. 길고 긴 대화 끝에, 나는 이민가방 하나를 들고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 불시착

소와 사람, 차가 함께 다니는 흔한 에티오피아의 거리
시장 가는 길, 마차에 치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도착한 아프리카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첫날부터 정전과 단수였다. 여름엔 하루에 2번씩 샤워하던 나였는데. 하루하루 내려놓아야 할 것이 늘어났다. 전기, 물, 집, 밥, 언어, 카톡. 대체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하지?


 첫 일주일 만에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이 동이 났다. 1년치라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과소평가했다. 일주일 만에 다 먹으니 앞이 깜깜했다. 전기와 물도 없는데 인터넷이 될 리 없었다. 친구들, 가족들과의 연락은 점점 생존신고로 변해갔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1년은커녕 한 달 도 못 되어 집에 가고 싶어 졌다.


 그러게, 엄마가 제정신이냐고 할 때 얌전히 말 듣지 그랬어. 하지만 2주 만에 다 집어치우고 싶어 졌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특히 엄마랑 얘기할 때는 더욱 그랬다.


 “우리 강아지, 어디 아프진 않고? 거기 사람들은 다 잘해주니? 대화는 되고? 말은 좀 통해? 음식은 입에 맞아? 날씨는 어때? 가져간 옷은 괜찮아? 추우면 벌벌 떨지 말고 옷 사 입고 알았지?”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았던 인터넷 때문에 엄마는 항상 카톡을 길게 보냈다. 나도 그랬다.


 엄마, 여긴 맨날 정전돼서 저녁밥 하나 만드는데 3시간도 넘게 걸리고, 밤마다 너무 깜깜해서 무서워. 물도 허구한 날 끊기고, 빗물은 더럽고. 얼굴 하얀 외국인이라고 구경하고, 만지고…  


 있지, 오늘은 하루에만 정전이 6번이나 됐다? 이게 어디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일이야? 근데 하도 정전되니까 그냥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거든. 세상이 온통 까맣더라. 나는 밤이 그렇게 까맣다는 걸 처음 알았어. 반짝이는 별이 내 얼굴 위로 쏟아지고, 옆에서 친구들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저녁밥 하려고 켜 둔 숯불만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그런 밤. 

밤은 고요한 거더라.

 



나, 여기서 충분히 좋아요.


 처음에는 ‘나 그럭저럭 괜찮아요.’라고 말하기 위해 억지로 좋은 점들을 쥐어짜 냈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정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별을 보며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밤이 좋아졌다. 어둠에 깊이 가라앉은 도시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길에서 마주친 염소에게 흔쾌히 길을 양보하는 법도, 아이들과 서로의 말을 몰라도 신나게 놀 수 있는 노하우도, 숯불로 고슬고슬한 밥을 만드는 타이밍도, 그리고 이 모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감사하며 잠들 수 있는 저녁도 배웠다.


내가 나누기 위해서 간 아프리카였는데, 배운 게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오길 잘했어. 나는 여기가 좋아.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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