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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09. 2019

에티오피아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어느 '분나 마니아'의 자기 고백

 에티오피아에서의 내 일과는 단순하다.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분나’를 마신다. 일을 한다. 점심을 먹는다. ‘분나’를 마신다. 퇴근한다. 끝.

 에티오피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분나’, 커피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아메리카노를 절대 마시지 않는 ‘라떼파’였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입맛이 바뀐다는데 나는 예외였다. 아니, 20살 땐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프라푸치노만 마셨으니, 라떼면 많이 발전한 셈이다. 더군다나 하루 한 잔보다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카페인이 너무 잘 받아서 안타까운 몸이었다.


하루 딱 한 잔.


그 한 잔을 씁쓸하고 맛없는 아메리카노에 투자하기엔 내 위장에게 미안했다. 아메리카노는 카페 기피대상 1호였다.


유나, 분나 마셔봤어?


에티오피아에서  출근했을  같이 일하는 친구, 요하네스가 물었다. 분나가 뭐야? 커피를 암하라어로 분나라고 . 분나 벳은 카페이고. 요하네스는 무심한 목소리로 묻지 않은 것까지 알려주고, 주문도 대신해주었다. 나중에 알게  사실이 있으니. 에티오피아인들은 오지랖이 넓다!


덕분에 드디어 그 유명하다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신다니,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에티오피아에 간다고 했을 때 ‘거기 예가체프라고 커피 유명하지 않아?’라며 부러워했던 친구에게, 에티오피아 본토에서 먹는 커피의 맛을 어떻게 묘사해야 잘 마셨다고 소문이 날 지 행복한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자바나 분나를 따라주는 모습. 설탕은 필수!


기다림 끝에 ‘분나’가 내 앞에 놓였다. 그건 에스프레소 크기 잔에 담긴 한약 색깔의 한 모금짜리 커피였다. 충격적인 비주얼에 잠시 말을 잃었다. 아메리카노도 쓰다며 마시지 않는데, 이건 도저히 마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생전 처음 보는 직장 동료가 에티오피아에 왔으니 마셔 보라며 권하는데 안 마시기도 곤란했다. 요하네스를 따라 설탕을 세 스푼 정도 붓고 나니 그럴듯해 보였다. 눈 딱 감고 입만 축여야겠다. 홀짝.


“헉. 너무 맛있잖아.”


쓰디쓴 한약 맛이 날 것 같던 분나는 구수하고 묵직했다. 검은 물은 부드럽게 목을 적시며 넘어가고, 씁쓸한 끝 맛을 감미롭게 남겼다. 아메리카노보다 쓰고 크레마도 없는데, 한국에서 먹던 여느 라떼보다도 부드러웠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커피는 우리가 최고라고.”

“대박. 내 인생에 이렇게 맛있는 아메리카노는 처음 먹어 봐. 대체 뭐가 다른 거지?”

“아메리카노? 그게 뭐야? 우린 이걸 ‘자바나 분나’라고 해.”

“여기에 물을 타면 아메리카노가 될 것 같은데.”

“커피에 물을 탄다고? 말도 안 돼. 그건 커피가 아니야.”


요하네스는 질겁했다. 에티오피아 커피에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점점 설득됐다. 나는 이 묘한 커피 맛에 중독될 것 같은 강렬한 기분을 느꼈다.




에티오피아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내가 그 날 마셨던 ‘자바나 분나’는 전통 주전자에 볶은 원두를 그대로 넣고, 그 위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주전자를 통째로 숯불에 끓인다. 어떠한 기계 장치도 없이 온전히 커피 원두를 우려낸다. 그렇게 끓여낸 물을 ‘자바나 분나’라고 한다. 풀어서 ‘주전자 커피’다.


자바나는 목이 길고 얇은 호리병 모양의 주전자다. 그 안에서 커피 원두가 겹겹이 쌓여 진하고 부드러운 커피 맛을 낸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생두를 바로 볶아서 쓴다. 배송 기간이 따로 없는 신선한 원두로 내리는 커피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을 터인데, 과거의 원두들이 남기고 간 향과 맛, 숯불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가진다. 이런 장인 정신이 담긴 커피가 고작 300원 남짓이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겐 '분나는 커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이다'는 강한 자부심과 애착이 있다.


왜 에티오피아에는 스타벅스가 없는지 알 것 같다.

고도 3,700미터 위에서 마시는 분나 한 잔의 여유


유나, 너도 에티오피아를 좋아하게 될 거야. 분나를 좋아하게 됐잖아?”


분나를 마시던 요하네스가 말했다. 고작 커피 하나로 그러겠냐며 웃고 말았는데,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한 달 만에 귀국하겠다던 내가 일 년 365일을 꼬박 채우고, 그마저도 모자라 일 년을 더 머무를까 고민했을 정도니까.


스타벅스에서 라떼만 먹던 나였는데, 스타벅스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분나 마니아’가 되었다. 귀국할 때 원두는 물론 전통 주전자, 자바나까지 모셔왔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그 분나의 맛이 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은 에티오피아를 사랑하고 자부심이 가득했다. 우리나라가 싫다고? 왜? 그럴 리가 없는데. 네가 아직 진정한 에티오피아를 모르는 거야. 너도 곧 에티오피아가 좋아질 거야.


늘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생각했다. 나도 한국에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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