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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Apr 27. 2019

아프리카에서 전기장판이 필요할 줄 몰랐어

아프리카는 춥다


엄마, 나 전기장판 좀 보내줘.

결국 한국에 SOS를 쳤다. 감기를 달고 산 지 딱 2주가 되었을 때였다. 감기에 걸린 첫날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코를 훌쩍이며 통화했다.


‘야, 내가 살다 살다 아프리카에서 감기를 다 걸려본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의 절반은 자기 연민, 남은 절반은 이유 모를 자부심이 가득했다.


비내리는 아디스아바바


아프리카는 춥다

그렇게 감기에 걸린 지 4일 차, 안 나던 열이 나고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신기하게도 기침과 콧물은 멎었다. 말라리아 초기 증상이 감기 증상과 같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말라리아는 아닐까라는 작은 의심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말라리아는 초기에 방치하면 갑자기 쓰러져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무서움에 덜덜 떨며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 제가 3,4일 전부터 감기 증상이 있는데, 말라리아 증상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에티오피아에선 말라리아에 걸릴 수가 없어요. 여긴 고산지대라 말라리아모기가 거의 없거든요.”

“선생님, 그래도 말라리아면 어떡하죠?”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덧붙인 질문은 ‘만일 내가 그 희박한 경우에 해당되면 어쩔 거냐’는 소심한 항변이 담긴 뉘앙스였다. 말라리아 검사를 받은 후에야 안심하며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단순 감기라고 확답까지 받았음에도 감기는 일주일이 넘도록 낫질 않았다. 급기야 2주 차가 되었을 때는 한 밤 중에 오한에 떨며 온갖 옷을 다 껴입고 잠들어야만 했다. 여름옷, 기껏해야 (합숙훈련 때 배급해주는) 바람막이 하나만 덜렁 들고 온 나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아프리카라서 당연히 더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한 아프리카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백두산 정상에서 사는 맛이 있다.

내가 머무른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해발 2,400m 위에 위치해있다. 백두산의 해발고도가 2,700m이니 나는 거의 백두산 정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백두산 정상에서 사는 소감이 어떠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첫째.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다. (산소가 모자라다.)

둘째. 밥이 맛없다. (설익은 밥을 삼시세끼 먹어야 한다.)

셋째. 내가 고산병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감사하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좋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의 날씨는 연중 한국의 봄가을 날씨와 같다. 내가 에티오피아에 막 도착한 3월은 건기라 날씨가 참 좋았다.


아침저녁에는 얇은 카디건만 입고 가볍게 산책하거나, 한낮에는 얇은 티셔츠 차림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분나 한 잔 하기에 행복한 날씨였다. 3개월을 그렇게 보냈기에, 우기가 이렇게 매서울 줄 몰랐다.


7월이 되자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온이 0도에 가까워지는, 한겨울 날씨도 연일 이어졌다. 비가 온 날은 유독 더 시렸다.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한기였다. 결국 2주를 미련하게 버티다 한국에 SOS를 쳤다.


7월. 한국은 뜨거운 한여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전기장판이 필요할 줄 몰랐어

“엄마, 나 전기장판 좀 보내줘.”

“전기장판? 아프리카에서 웬 전기장판이니? 거긴 많이 추워?”

“응. 여긴 너무 추워. 아, 엄마 나 패딩도 같이 보내주라!”


엄마한테 받은 조끼 패딩과 전기장판은 귀국하는 그 날까지 알차게 쓰고 왔다. 이제 누군가 에티오피아에 간다고 하면 전기장판과 패딩은 꼭 챙기라고 귀띔한다.


누가 알았을까? 아프리카에서 전기장판이 필요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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