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뛸래? 정책할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4월 초면 국회 윤중로는 벚꽃이 흐드려져 관람객들로 넘쳐나지만,
제대로 된 벚꽃 구경을 하지 못한 채 20년을 지냈다. 4월이면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이 한창인 계절이니깐...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온전히 꽃의 아름다움과 봄이 주는 경쾌함에 맡겨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거다.
몸은 윤중로를 걷고 있어도 마음은 온통 선거 바닥을 훑고 있었으니,
눈에 보이는 건 꽃인데 마음은 한겨울처럼 감성이 얼어 붙었다고 해야 하나.
남들 다 하는 벚꽃 구경은 하고 살아야 하는거 아니냐는 생각에 벚꽃에 눈이라도 맞추는 산책을 하긴 했지만, 전혀 벚꽃이 주는 설레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캠프로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 뿐.
그때는 그런 삶이 좋았고 재미있었다.
선거를 통해 선택 받고, 선택 받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내느라 밤낮없이 뛰어다녔던 그 시절의 나..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되지도 않는데 선거철마다 출마를 거듭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선수가 아닌 선수를 보조하는 격이었던 나같은 경우에도 선거가 주는 짜릿한 매력속에 허우적 댔던 걸 보면 그들이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될 것 같겠지. 조금만 하면. 또 지지자들의 함성이 귓가를 쉬이 떠나지 않겠지.
선거는 패배하면 끝이지만 승리하면 그보다 더 큰 짜릿함이 없다.
특히 여론조사에서나 여러모로 판세에서나 뒤집힐 기미가 없던 선거에서 막판에 뒤집기를 하고 선택을 받게 되는 경우에 그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선거는 바람, 인물, 구도의 싸움이라고 했다. 또 인물과 구도, 공약을 3요소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당은 인물과 구도, 바람의 측면에서 종합적인 고려를 해 이슈를 선점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작업이 공천의 과정이다. 젊은피 수혈이나 노무현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0년 총선과 2004년 총선이 대표적인 바람이 지배하는 선거였다. 그때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정치판을 떠났던가.
국회 보좌진은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문서를 잘 작성하고 의원의 심기를 잘 보전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국회의원을 당선시켜야 하는 자리다.
물론 국회 보좌진들이 당선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상수는 아니다.
다만 보좌진들이 없으면 선거에서 싸움은 정교하게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당선을 목표로 후보와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는 숨은 그림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전략을 고민하는 실무자들이니 말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이 되어야 정책을 펼칠 수 있고, 정책이 부실하면 선거에서 제값을 하기 어렵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선거가 너무 싫어서 선거철만 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보좌진도 있기 마련이다.
체질이 맞지 않는 거다. 누군가를 상대로 경쟁하고, 또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는 것은 체질이 맞지 않으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수 있다.
차라리 선거 뛸래? 정책 할래? 물어보고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봤다.
전천후로 다 해야 한다고 하니 실망하며 좌절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들은 오래 못 버티고 국회를 떠났거나 선거철이 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복귀하는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여하간, 선거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내가 믿는 후보가 선택되도록 이성과 감성을 풀 가동해 정교한 플랜을 짜는 일이다. 유권자에 대한 과학적이고 정확한 분석, 공약에 대한 정밀한 이해와 그림,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과 요소요소 사람의 마음을 확실히 캐치하는 꼼꼼함,
선거판의 이슈를 만들어가는 기획력과 과감함...
이런 모든 능력이 종합되어야 선거국면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에, 선거는 종합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종합예술의 PD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후보자가 배우라고 하면 그 배우에게 적절한 대본과 상황을 만들어 연출해가는 것은 보좌진들이 아닐까.
사명감을 갖고, 선거에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전략가로서 평가를 받는 것도 보좌진으로 이름값을 높이는 일임을 분명하다. 물론 훌륭한 보좌진이 있다고 반드시 다 당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보좌진은 선거에 반드시 필패한다는 그런 법칙은 아직도 유효할 것이다.
4,5년을 주기로 선거철이 돌아온다.
국회의원 임기는 4년, 대통령 임기는 5년.
1995년부터 시도지사 등을 뽑는 4년 임기의 지방선거제도가 도입되었으니
1995년부터 선거는 거의 매년 또는 격년으로 실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지방선거, 1996년 국회의원 선거, 1997년 대통령 선거, 1998년 지방선거
2000년 국회의원 선거, 2002년 대통령선거, 2002년 지방선거, 2004년 국회의원 선거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선거,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원래는 2018년인데 탄핵으로 앞당겨졌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
쉼없이 돌아가는 정치일정 속에 국회 보좌진들은 중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회에 입문 후 활발한 정치 활동과 입법활동 지역구 활동을 통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번 선거에서 재도전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국회의원들이 누구한테 잘 보여 이끌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면 공천받고 당선되는지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치열한 전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그냥 퇴출되는 파리같은 목숨이다.
한번 왔다 사라져가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랴. 이름도 가물가물한 정치인들은 나름대로 치열한 바늘구멍을 뚫고 입문했지만 생존하지 못한 비운의 인재라는 평이 늘 따른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끝내는 이도 있지만 기를 쓰고 살아남으려고 해도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회 보좌진들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바로 타임스케줄을 짠다.
초기 1년간은 확실한 의정활동으로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법안이나 제도 개선을 통해 활동을 넓히고 2년차에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며, 3년 차에는 지역구를 정해 터를 닦는다.
3,4년차에 접어들어서는 공천을 받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는데, 출마를 할 지역을 정한 후 그곳의 여론이나 평판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뛴다.
정당의 공천과정은 까다롭다. 엄청난 분량의 공천심사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데 거기에는 세부적인 업적이나 성과, 앞으로의 활동계획 뿐만 아니라 세부적으로 갖고 있는 조직이나 기타 본인이 공천을 받아야 하는 메리트가 확실히 각인되도록 작성해야 한다.
보통 한 지역에 한 사람의 희망자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십수명에 이르기까지 출마를 꿈꾸는 이들이 공천심사 서류 기한에 맞춰 서류를 제출한다.
공천심사위원들은 외부위원도 포함되어 여러가지 면에서 공천의 적격성 등을 심사한다.
여기서 공천을 낙점할 때 가장 많이 염두에 두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당선 가능성'이다.
당선 가능성이란, 정당이라면 당연히 봐야할 부분이다.
정당의 존재가치는 본인들이 추구하는 국가 경영에 대한 가치나 비전, 이념 등이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도록 하는데 있다.
후보를 공천했는데 우수수 다 떨어지면 정당은 존재가치가 없다.
이 당선 가능성이라는게 때로는 많은 우수한 지망생들의 발목을 잡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경력을 바탕으로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왔다고 하더라도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듣보잡은 사실상 공천 과정을 뚫기 어렵다.
내가 선거과정에 관여했던 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나하나 커리어나 성품, 또 활동했던 것에서는 누구에게 뒤질 바가 없는 훌륭한 인재였지만,
문제는 당선가능성이었다. 인물만 뛰어나다고 선거에서 필승하지는 않는다.
인물은 흠잡을데 없는데 상대후보가 워낙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라 여론조사 결과는 참담했다.
그 결과를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상대 후보는 각종 비리나 구설에 오른 인물이었지만 높은 인지도에 아까운 인물이 빛을 발하지 못한 사례라고 해야 할까.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떤 분은 공천에서 떨어지자 공심위원이 몰고 가는 차에 정면 돌진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치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공천 탈락에 저항까지 할 정도였으니,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될거라는 착각을 했던 건 아닐까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선거 보름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낙선이 명약관화하던 후보 캠프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뚫고 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선을 시켜야 하는 게 목표였으므로 그냥 이 순간을 잘 보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책을 정성스레 만들고, 사람들을 아무리 만나 얘기를 해도, 지리멸렬한 지지율은 변동이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완전 뒤집어 엎어버리는 수준의 혁신이 필요했다.
메시지를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행위와 선택의 정당성은 아무리 그게 옳다고 해도 사람들 귀에 들어갈 타이밍이 지나버렸다.
전광석화처럼 정치권이 몰아부친 무모함이 역풍이 되어 고스란히 우리 눈앞으로 가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선 후보자 공보물을 다 뒤집어 엎었다. 내일 모레 인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컨셉을 완전히 바꿨다.
후보가 선거운동 개시일 날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며 손에 전해져 오는 차가움을 느낀 후 말했다.
"엎자. "
우리 모두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말을 후보가 했다.
선택받을 수 있는 후보는 민심을 정확히 진단하고 민심에 따르는 후보다.
후보의 선택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던 터였고.
그날 부터 밤셈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기획사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기획사 사장과 디자이너와 함께 1면부터 다시 하나하나 수정을 했다.
슬로건 하나하나, 문구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조사 하나하나까지. 나는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 바꾸고 또 바꾸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이미지 전송이 가능한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건 없었다.
전화통을 붙잡고 일단 되는대로 문구부터 후보와 직접 통화하며 컨펌을 받았다.
한 면 디자인이 완성되면 바로 이메일로 캠프총괄에게 보냈다. 컨펌을 하면 그대로 진행되었고 수정사항이 발생하면 또다른 디자이너가 그 면을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당장 내일 인쇄를 맡기지 않으면 법정기한 내 공보물이 제출되지 못한다.
잠을 자지 않다고 피곤하지 몰랐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종 시안을 받아들고는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캠프로 행했다.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겅중겅중 지하철 역사를 뛰어다니며, 캠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보를 만났다. 헐레벌떡 차에 올라탔다.
보여드렸다. 한 면 한 면 묵중한 무게와 눈빛으로 들여다 보던 후보가, 몇 마디 수정 사항을 지시한다.
바로 받아적어서는 곧 바로 사무실로 직행.
오전 열시까지 마무리를 해야 한다.
피를 말린다. 초치기 초치기 이런 초치기가 없다.
수차례 오가는 일상을 보낸 후 최종 컨펌.
아무리 국회의원을 욕하고, 아무리 정치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냉소가 넘쳐나도 나는 한가지 믿고 있는 바가 있다. 바로 국회만큼, 또 국회의원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경험을 한 이는 없다는 점이다.
전재산을 모두 날리고 길에 나앉기 일보직전인 상태를 우리는 4년에 한번씩 겪는다.
천당과 지옥을 4년에 한번씩 오간다.
보좌진 내 개인의 일상은 포기하지만, 또 다른 인생이 써진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받지 못해도 보좌진은 결코 직업인이라고만 할 수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창조인에 가깝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 안에 멋진 성과물을 내야 하는,
시한부 창조인말이다. 그 시한부 인생을 끝내는 것도, 오로지 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