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은......글쎄? 왜?!
20여 년 전 내가 국회를 선택한 이유는 이러했다.
첫째, 내 꿈을 지속할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글을 써서 먹고 살려고 수 년을 투자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공모전에 도전할 만큼 끈기가 없었고, 그렇다고 재능이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열망만 있었지, 사실 내 그릇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서히 안 될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둘째, 집안이 어려워졌다.
동생들은 죄다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는 판국에, 뭐라도 해서 정기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님께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 월세, 공과금, 생활비 정도는 벌고 부모님 용돈도 보내드릴 정도는 되어야 했다.
부모님은 학원 선생님, 학습지 교사 등등을 전전하며 글을 써서 성공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더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나에 대한 미안함은 부모님이 갖지 않아도 될 감정이었다. 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마침 찾아온 기회였다.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 역시도 잠시 뒤로 미뤄놓자고 했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 자리잡고 얼마든지 내 시간을 쪼개어 해도 무방하리라고 봤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당시 그런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글을 쓰는 일도 정치하는 사람을 돕는 일도 결국 사람들의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국회에 들어가서 난 각종 글쓰기는 무조건 내가 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다.
인터뷰부터 축사, 칼럼, 연설문,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기는 글, 자료집에 들어가는 인사말이나 발제문 등등.
국회에서 글을 쓰는 일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졌다.
당직을 맡고 있는 경우 매일 논평이나 성명서 등을 써야하니, 일주일에 최소한 7개의 서론,본론, 결론이 있는 논리적인 글쓰기를 해야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의 행사에 참석해 축사할 기회가 있는데 이 역시도 초고를 잡고 의원과 상의해 원고를 만든다.
정기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언론사에서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2주에 한번 꼴로 쓴다고 해도 6개월이면 12개의 칼럼을 써내야 한다.
민원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야할 경우도 있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소소하게 올라오는 글들에 대한 답글도 작성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짝수 달마다 열리는 상임위와 9,10월경의 정기국회 등은 질의서를 준비해야 하는 일로, 이 역시도 최종 종착점은 글쓰기이다.
법안 역시도 글쓰기의 영역에 들어간다. 입법 취지 등이 설득력있어야 많은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린다.
일반적인 문학적 글쓰기와 달리 국회에서의 글쓰기는 진실이나 사실을 근거로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통계와 논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느냐는 관점 역시 글 속에 녹아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적절한 묘사와 어휘, 단어 등을 찾는 일 역시도 중요하다. 불필요한 해석이 달릴 감정이 담긴 언어보다는 절제된 가운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일은 꽤 많은 학습을 요구한다.
사실 국회 일은 절반은 글을 쓰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간을 국회에서 일했으니 꽤 오랜 기간 글쓰기 관련 훈련의 시간을 거친 거다.
가장 큰 도움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국회에서의 글쓰기는 나의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000의 이름으로 나간다.
국회의원 000는 대필을 했기에 그 사람의 글이 아니네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글의 관점과 풀어가는 방식, 인용하는 소재나 데이터 등이 국회의원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단지 그걸 그럴싸하에 구성하고 풀어가는 경우도 많기에 엄밀히 얘기하면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가진 논리나 표현의 부족함, 근거의 빈약함을 깨닫고 스스로 보완해가는 변증법적 학습 과정이다.
과거 학창시절, 독서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할 때 핵심을 잘못 정리하거나,
요약을 엉터리로 하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이 중심을 잡아주어 교정을 할 수 있었듯
국회에서의 글쓰기는 논리를 보강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트레이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고강도로 이루어지는.
고강도인 이유는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을 오래 주지 않는다. 지금 당장, 또는 내일까지, 적어도 일주일 뒤까지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또 그 결과물은 나와 의원만이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게된다.
결국 그 글이 국회의원을 규정짓고, 그 글로 인해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생각이 드러난다.
글을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그래서?가 설득력있게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자칫 잘못된 표현이나 단어, 인용 등을 했다가는 낭패보기 일쑤다.
내가 국회에서 20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100%는 아니겠지만 그나마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인정을 받았기때문이라고 본다. 그 계기로 선거캠프 등에 연설문이나 홍보 등을 맡아 역할을 하기도 했던 걸 보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문학작품이든, 비문학이든 말이다.
국회가 하는 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국민의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고 평온하게 움직이는 일.
결국 정책이나 제도도 국민의 마음에 와 닿아야 쓸모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때 나는 꿈을 포기한 것 처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꿈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내 자유의지만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쪽에 가깝지만,
어떤 것을 선택할 때는 최소한 내 자신의 자유의지만으로 선택을 하려 하는 편이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그길로 가기 위한 길을 스스로 터득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 체, 그냥 해야하니깐 또 남들이 다 하니깐. 나와 비슷한 동료가 저 자리에 올랐으면 나도 저 정도는 해야 하니깐 하는 생각은...
글쎄, 동력은 될지 몰라도 오래가기는 어렵고 자신을 충만하게 하기는 어렵다.
국회를 떠난 뒤 이곳저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떠난지도 오래되었고 일단 거절을 했다.
주변에서는 기관장도 하고, 다시 청와대도 가고 그래야지 하면서 온갖 바람을 넣는다.
떠나온게 오래인데 내가 아직 저런 얘기를 듣는다니 헛되이 청춘을 보낸 것만은 아니네 싶지만, 그때 뿐이다.
나는 지금 충분히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가고 있고, 그것이 꼭 국회를 통해서만 이뤄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어떤 공간에서 있느냐는 것은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일뿐.
나는 지금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이곳에서 여전히 내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다.
그러면 족하다. 머지 않아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 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성취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