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사랑"
먼 훗날의 며느리에게 미리 말한다.
너는 니가 하고 싶은 것에 충실하며 살라고.
이래야 한다는 당위때문에 무조건 희생하지 말라고.
자주 시부모님 보러 오지 않아도 좋고 명절날도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다만, 행복하게 행복하게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진짜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달라고.
가식이 아닌.
며느리가 생기려면 앞으로 수십년은 지나야 할 일이지만,
가끔 주문처럼 내게 다짐하곤 한다. 꼭 그런 엄마가 되자고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2008년 나이 마흔을 앞두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한 두 해 전 삼십대 수석보좌관으로 승진을 했고, 한창 바쁜 때였는데, 결혼을 했다.
왜 결혼을 했을까, 내 동생과 절친의 표현대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 다들 신기해도 했고, 또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시기에 결혼이라니
의아해 하는 시선도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따뜻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에 있었다고 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늦은 나이였기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장 소원했다.
하지만 결혼 1년이 넘도록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너무 바빠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신체에 무슨 문제가 있나.
뭘까...
기다림이 근심걱정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상상임신까지 해서 남편과 나는 실망하는 일도 있었다.
기대하지 않고 있던 차에 새생명이 찾아왔다. 너무 기뻤지만, 또 다른 근심이 생겼다.
너무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긴 국회가 안바쁜 시기가 있긴 하겠냐만, 선거도 있었고
무엇보다 활동이 많은 분을 보좌하고 있었기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임신 6개월이 되도록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주말에도 출근하기 바빴고, 일은 끊임없이 생겼으며, 주중에도 밤 열시, 열두시까지 일하는 날이 잦았다.
그런 바쁜 와중에 임신사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거니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말대신 나는 사직서를 써서 책상서랍 제일 윗칸에 넣어뒀다.
임신기간동안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출산을 하면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출근하거나 하는 일들이 부담이 될 수 있고, 과중한 업무를 처리할 상황이 안된다고 지레 짐작해 일단 그만둘 생각부터 했다.
배려와 양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나머지 차라리 관둘 생각을 한 것이다.
사직서를 써서 책상서랍에 넣어두자 신기하게도 말해야겠다는 용기가 솟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 임신했습니다."
"어? 진짜?"
사실 그의 답변이나 표정을 나는 이렇게 예상했다. 심각하게 눈빛을 떨구며
"그래 알았다." 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무언의 사직 종용 비슷한 걸 예상했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이내 눈물이 글썽였다.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안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이런 말까지 보탰다.
"축하해. 나는 얼마나 걱정했는데. 실례가 될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임신 소식이 없는걸 보면 힘든건가... 근데 그걸 물어보지 못하겠더라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얼마나 걱정했는데...'를 말하면서 그분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얼떨결에 그와 포옹을 하고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덧붙여 당신은 내가 살이 자꾸 찐다고만 여겼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배가 나오는 걸 임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살이 찌고 있다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게 아니고 두루뭉실하게 나왔으니 그도 그럴 법 하다.
그렇게 나는 임신 10개월을 채웠고, 10시간 넘는 진통 끝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때도 어김없이 와서 축하해주셨고, 백일에도 어김없이 축하해주셨다.
그리고 꽤 오래 그분을 보좌했다.
내겐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보스로 남아 있는 분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기본적으로 베어 있는 분이셨다.
무슨 말이든 귀담아 들었고, 사람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 만난 그 보스때문에 나는 사람에 대한 진짜 사랑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나는 억세게 운좋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때 사직을 해야 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아냈을까.
예상키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 이상 풍부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참 좋은 분을 만났다.
나는 항상 그분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늘 부족하다.
이보다 더한 정치가 있을까.
입만 열만 국민의 삶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직원에게는 한없이 인색하고
그 사람이 처한 고통과 현실이 혹여 내게 짐이나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마음이 아닌 보기좋은 타이틀을 앞세워 정치를 하는 사람말이다.
정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그즈음 들었던 것 같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건 당연한거 아니냐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다.
아직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임신, 출산을 미루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고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고 또 게다가 경력 단절이 될까 두렵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임신, 출산의 타이밍은 금새 지나쳐 간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겠다는 젊은층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가 중요한 것은 더 크게, 높게 일하고 싶다는 욕구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분을 모시며 정말 열심히 일했고, 즐겁게 일했다.
가족의 행복이 일터의 행복으로 이어졌다.
그전까지는 그냥 임신하면 관둬야지 하고 생각했던 내가,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자
국회에서의 의정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큰 버팀목이 되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고민하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책, 입법들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제도를 살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직원이 임신소식을 알려왔다. 기뼜다.
그런데 어렵게 임신을 해서인지 병원가는 일이 자주 생겼고, 난산이라 출산휴가도 길게 줘야했다.
나는 망설임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때는 어땠는데, 휴가를 달라고? 다른사람들 생각해서 적당히 해'하면서 그 친구에게 눈치를 주는 못된 상사가 아닌 것에 나는 감사해했다. 다 10여년전 내가 모셨던 그 의원님 덕분이다.
만약 '일이 바쁜데 결혼한다고? 아이때문에 휴직한다고? 참 한가한 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장은 일이 펑크가 날 수도 있고, 당장은 일이 잘 안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은 결국 회사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더 큰 에너지를 분출한다.
내가 일하는 곳이 나의 삶도 존중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 더 열정을 바쳐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 사업이 소중하다면, 내 가족이 소중하다면 나의 직원, 나의 동료 선후배들의 인생 역시도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 미래의 며느리에게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연습을
지금부터 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