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조건

''마음을 얻는 일"

by 유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도 그러하다.

일 년 전, 한 달 전은 물론이거니와 불과 일주일 전, 하루 전 기억도

눈앞에 실체가 사라지면 아득하다. 잊어야 할 기억이든,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든 말이다.


어찌 15년전 일을 기억이나 할까 싶지만 원래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할 의도는 아니므로,

그 시절의 어렴풋한 단상으로나마 글을 쓴다.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나는 수석보좌관 타이틀을 달았다.

총괄관리를 하는 수석보좌관이 되면 무엇이든 마음껏 내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임명 1년도 안되어 나의 열망을 펼쳐보기도 전에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성들의 수석보좌관 비중은 10%도 안되던 시절인지라 다소 외로웠던 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수석보좌관들 평균 연령대인 40대 초중반보다 어린 37세였던 것도, 나이로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니깐 그것도 괜찮았다.


내가 그 자리를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의원의 의중이라며 해고 권한이 없는 보좌관이 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와 가방을 싼적도 있었고,

계속 일하려면 결혼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이나 중요한 업무 등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국회 보좌진의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석보좌관이 되고 나니 그전까지의 눈물은 댈 것도 아니었던 거다.

오로지 일만 하던 워커홀릭이 갑자기 리더가 되면서 생긴 혼란이라 지금은 정의내리지만

그때 당시 나는 무능력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패거리를 형성하는 무능력자들의 못된 버릇때문이라고 눈물의 원인을 찾았었다.


우리 의원실은 나와 행정 비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었다.

인턴 2명까지 포함해 총 8명 중에 2명만이 여성이었고 6명은 남성이었다.

첫 1년간은 손발을 맞추고 서로를 파악하는 시간을 보내는 듯 했으나, 국정감사를 한 번 하고 나니 슬슬 패거리를 이루고 권력싸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남성들 몇몇이 그룹을 형성했다. 물론 그룹내 적당히 발만 걸치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내게 잘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은 끈끈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늘 일관된 원칙과 충성을 말했다.

업무의 퀄리티를 먼저 봤고, 퀄리티가 안되면 혼을 냈다.

쓸데없는 패거리 만들기 전에 먼저 역량부터 키우라는 메시지를 주구장창 보냈다.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들의 타깃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술먹으면서 함께 공감하고 내가 너만큼은 책임져주겠다는 말이라도 할 줄 아는 리더였다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권위적인 리더였다.

'국회 보좌진은 파리목숨인데 수석보좌관이 챙겨주지 못하면 누가 챙겨준단 말인가.' 아마도 그들은 그리 한탄했을 것이다.

그즈음 끼리끼리 모여서 술자리를 자주 갖더니, 내게 "뭐라도 나누는게 진짜 리더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반말과 욕설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의원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너무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모두 막막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난 언젠가는 너희들을 모두 정리하리라는 생각을 했으니.. 그 마음이 전달이 되지 않았을리가 없다.


적절한 긴장관계 속에서 어느 누구하나 이탈자 없이 1년간을 더 보냈다. 권력싸움하면서 나와 뜻이 잘 맞는 이도 생겼고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더 멀어진 이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다.

그냥 서로를 인정해버렸던 걸까.


그후 머지 않아 국회의원 도전 실패로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는 정리되었고,

그중에 몇몇은 여전히 국회에 있고 공부를 하는 이도 있고 민간기업에 가 있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 후로 바로 정부부처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완전히 국회를 떠나 있는 상태다.






최근 옮긴 직장에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업무역량은 뭐가 부족한가요? 어떻게 하면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조직이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할까요? 와 같은 일로 하루종일 고민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한다는 편이 더 맞을 거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들에게 일단 업무역량부터 똑바로 키우고 연봉 인상과 휴식을 말하라고

가슴에 비수를 꼽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일단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자신들도 자신들이 하는 애기가 자칫 이기적으로 비칠까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나는 일단 공감한다.

'그래, 맞아 니 말대로 근로조건들이 일을 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지. 내가 많이 노력해볼께. 미리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는 더 신경쓰마. '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런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어려웠을텐데. 나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겠니.'라고.


그러자 나에게는 더 한 책임감이 생겨났다.

직원들의 업무역량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급여인상과 복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급여도 조금이지만 인상했고 복지도 조금씩 개선했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10여 년 전 갑자기 일만 하다가 리더가 된 후 겪었던 그 감정의 소모와 아픔, 상처들이 오늘날 나를 조금 더 여유롭게 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숱하게 흘린 눈물은 오늘날 나의 팀원들이 작은 평온을 누릴 수 있는 값진 수업의 댓가인 셈이다.




p.s 그때 그 친구들과는 가끔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로 지낸다.

보고싶다는 말도 주고맏으며 그렇게... 물론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만서도. ㅎㅎ

나는 그들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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