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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정확 그리고 +α

-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이유

by 유연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열 명 있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일할 때 종종 했던 말이다. 곁에 동료는 '정말 그러면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까마득한 오래 전 기억이 묵은 이메일 기록을 보니 떠올랐다. 참으로 바쁘게 살았구나 싶다.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조간과 방송 뉴스를 일독하고 주요 쟁점을 요약 정리해 보고서로 작성해 오전 9시에 열리는 당 회의에 참석했다. 당 회의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물론 그보다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회의결과를 브리핑하거나 후속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당직을 맡고 있던 의원을 보좌하는 일은 기존의 정책, 정무 업무에 브리핑 자료 작성이나 언론대응 등 플라스 알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픈 일이지만, 출근시간을 당기거나 퇴근시간을 늦출 수 밖에 없는 물리적 여건이었다.


정치는 날마다 뉴스를 생산해낸다.

긴급한 사건사고가 발생해 입장을 빠르게 정리해야 하거나, 사건의 원인을 파악해 대안이나 대책을 만들어야 하기도 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경우 예정되어 있던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사건 현장으로 급파되기도 한다.

여야, 정당과 정당, 피아가 있는 정치권에서 상대진영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원내대책회의, 당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원내대표나 당대표가 하는 말은 그날 정치뉴스의 시발이 되기도 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투쟁이 시작되기도 하고 협치가 시작되기도 한다.

원구성 협상이나 국회 법안처리, 예산안 심사 등을 놓고 협상을 벌일 때에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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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속보와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연합뉴스 속보 알림 서비스도 있고 스마트폰 앱으로 속보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지만 이십년 전, 십년전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문자로 속보를 전달해줬던 시절이었다. 기자나 아는 보좌관 등을 통해 속보를 전달받고 바로 의원한테 보고하고 이렇게 하자는 대응방안을 세우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지나고 보니 국회 업무는 신속, 정확 그리고 거기에 뭔가가 추가된 업무였던 것 같다.

섬세하다던지, 이슈를 만든다던지, 정무적인 판단이 뛰어나다던지.....

누구누구는 '정무적인 감각이 뛰어나' '전략이 뛰어나' '이슈 파이팅 잘해' 등과 같은 평가를 받을 때 비서가 비서관이 되고 보좌관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은 신속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하세월이면 곤란하다. 그 하세월은 의원마다, 또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모 의원은 일을 지시하고 5분, 10분 뒤 결과물을 챙겼다고도 한다. 물론 간단한 사실확인은 바로바로 답을 할수 있어야 한다. 수치나 사람 이름이나 연도 등등.

상황에 대한 파악과 그에 따른 대책까지를 불과 10분만에 내놓는다는 것은 너무하다 싶겠지만,

디테일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이라도 일단 1차 보고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믿을만한 정보원, 빠르게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을 짚어내 바로 전화로 확인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흐름과 방향은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회의장에서 발언을 할때 부정확한 내용이나 사실을 지적해 우스운 꼴을 당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다.

얼마전 최강욱, 김남국, 김종민 의원 등이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발언했다가 망신을 당했듯 정확한 정보를 기반한 문제제기나 상황판단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런 기본이 안되어 있어서 직을 내려놔야 하는 경우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에 더 추가할 것은 섬세하고 통찰력있게 사안을 진단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글로 표출할 수도 있고 의원의 말로도 나올 수 있으며 sns에 적힌 문구로 드러날 수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공감이 가고 수긍이 가는 말만 한다는 생각이 들때 대중은 그 정치인에게 호감을 갖고 결국 인지도를 높이고 매력도를 높이게 된다. 물론 그 말에 진정성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없는 말이나 글은 대번에 대중들은 알아차리고 마음을 돌리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무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한 중진이 어느날 갑자기 탈당을 선언하고 신당창당을 한다고 했을 때 의원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며 정당은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는지

계파간 갈등이 심각해져 언론에서 각종 질문이 쏟아질 때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예산심사가 늦어지는데 대한 국민적 질타가 쏟아질 때......


판단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으나, 매사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는 생각이 없거나 몸사린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예전 이메일을 보다보니, 낙선한 의원님이 내게 '나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하면 안될 것 같다. 앞으로 일은 네가 더 많이 고민해달라.'고 했던 기록이 보였다. 그때는 이 말이 부담이었는데, 지금은 이 말이 몹시 고마운 말이었구나 싶다. 그 말은 신뢰였다. '나는 내 문제를 제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으니 나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판단을 할 수 있는 네가 더 고민해서 더 좋은 길을 찾아봐주길 바란다'라는.


나는 그때 그 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것 같다.

해석을 정확히 했더라면 의원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고민했을 터인데...

나는 의원님이 처한 힘겨움만 봤지 객관화하는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국회에서 일을 잘하려면 의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을 잘해야 한다.

일의 시작인 직언도, 충언도, 객관화가 안되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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