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보호자가 되고 싶다.

전남편과 재혼하기

by 딱좋은나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만 해도 우리는 웃으며 병원에 들어갔다.

2년 전 검사 때 탈모약 탓인지 간수치가 높게 나왔던 남편은 기본 검사 외에도 간초음파 검사를 추가했고, 나는 가족력의 이유로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추가했다.


그런데 열흘 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병원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의 간 초음파 상 뭔가 보이니 정밀 검사를 추가로 해야 한다고.


동네에서는 꽤 큰 병원이지만 나는 그 병원에서 검사하는 걸 원치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몇 가지 수술과 검사를 하셨던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은 서울이다! 하고 느끼는 바가 많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정밀 검사는 서울로 가서 받자고 했다.


건강검진을 했던 병원에서 초음파영상 CD와 진료의뢰서를 받아 상급 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이다 보니 예약을 하고 진료를 보고 검사 날짜를 잡고 결과를 들을 진료 날짜를 다시 잡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MRI 검사 당일, 괜찮을 줄 알고 남편 혼자만 보냈다.

그런데 올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은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괜스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ㅡ원래부터 나는 내 통제 하에서 벗어난 일에 대해서는 걱정과 염려가 많은 사람이다.


한참 후 결제취소 문자가 왔고 남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나 진짜 죽을 뻔했어


MRI는 조영제 부작용인지 뭔지 40여분 촬영을 하다 갑자기 사지 마비가 와서 중단했단다. 좁은 통속에 갇혀 없던 폐쇄공포증이 오고 손가락 까딱 한 번이 되지 않았단다. 촬영 중단을 알리는 버튼조차 누를 수 없어 겨우 소리를 질러 의료진에게 알렸단다.


급하게 MRI 촬영이 중단되고 사지를 못쓰는 남편을 남자간호사들이 회복실로 옮기고 몸을 주무르길 한참 한 후에야 마비가 풀렸다 했다.


40여분이 더 남은 촬영을 도저히 이어갈 자신이 없어 검사비를 돌려받고 그냥 돌아오는 길이라 했다.


그 얘기를 듣는 내내 따라가지 않았던 내가 어찌나 원망되던지.

간호사들이 보호자 어디 계시냐고 했을 때 남편이 혼자 왔다고 말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사람이 야매 이혼남이 아니라 진짜 이혼남으로 혼자 살고 있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내가 힘든 순간 기대고 싶은 사람이 저만치 멀리 있다는 건. 결혼 초 수 없이 겪어본 내가 제일 잘 아는 아픔이자 고통이다. 아무리 미워도 내 남편이 내가 겪은 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자책하게 됐다.






며칠 뒤 다시 잡힌 검사일자에 맞춰 남편은 CT를 찍었다. 이번에도 씩씩하게 혼자 갔지만 잘 찍고 왔다며 웃으며 귀기했다.





결과를 듣는 진료날이 되어 의사 선생님 앞에 우리 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CT 결과, 가장 염려했던 간과 쓸개는 당장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도는 아니니 추적 관찰만 하면 될 것 같다했다.

휴우하고 한숨 돌리는 차에 십이지장 쪽에서 뭔가가 보이는 게 영 찝찝하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십이지장을 보는 특수 내시경을 하고 필요시 조직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이게 뭐냐고, 혹시 암일 수도 있냐고 물었지만 확실하게 보고 말씀드리겠다는 말로 대답을 피하셨다.



그리고 십이지장 내시경 당일, 수면 마취 때문에 반드시 보호자를 동행하라 해 이번엔 남편과 함께 갔다.


"OOO님 보호자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와이프입니다."

"네. 배우자님요."

간호사가 보호자 구분란의 배우자란에 체크를 했다.


그리고 내게 자리에 가서 기다리라길래 간이 의자에 앉는데 쫄래쫄래 따라붙은 남편이 그런다.


"앞에 전이 빠졌잖아, 전. 너 전 부인이잖아."


"그럼 여기서 전부인 이라고 해?!"


전 배우자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법적으로 보호자가 아닌 관계이다.

법적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는 그냥 아는 사람이다.



얼마 뒤, 남편이 호출되고 혼자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십이지장 쪽을 잘못 건들면 췌장염이 생기거나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등등등 위내시경보다 더 두껍다는 십이지장 내시경 후 단기적인 부작용이나 인과관계로 유발될 수 있는 증상 등의 무서운 얘기를 들었던 기억에 내 온몸에 털이 버쩍버쩍 섰다.


남편이 아파 드러눕거나 죽고 없다는 상상만 해도 벌써 눈물이 앞다투어 흘러내린다.


내시경 센터 앞에 앉은 젊은 여자가 혼자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울고 있으니,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근무 중인 간호사들도 왜 저러나 하는 눈으로 날 봤다. 그들의 눈에 나는 사연 있는 여자로 보였을 테다.



암요, 암요. 제가요 사연이 있고 말고요.

남편은 사랑하지만 돈으로 배신당해 이혼한 이혼녀이고요,

전남편이랑 한 집에서 부부 같은 동거인으로 지내요.

근데 전남편 아파도 보험금 내가 못 타요,

병원비랑 보험료는 다 내 카드에서 나가고 있는데도요!

그래요 까짓 거 돈이야 아무렴 어때요.

아픈 꼴 보려고 속 썩어가며 이혼하고 애 태워가며 동거 중인 게 아닌데!

아무리 이혼했어도 내 마음이 그대로라 저 사람 없으면 내가 못살아요!!!






이 순간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너무 속이 상했다.

내가 그의 아내가 아닌 것이 분하고 원통했다.

사랑하는 그에게 나는 보호자조차 되어줄 수 없는 사람이다.





혼자 신파를 찍으며 대략 20분쯤 지났을까,

남편의 이름을 호명하며 보호자를 호출하는 간호사에게 급히 다가갔다.


"000님 조금 전 내시경 검사 완료하셨고요,

지금부터 30분 정도 회복하고 나오실 거예요.

그리고 오늘 내시경 보면서 조직 검사 하느라 조금 떼어낸 부위 있으세요. 조직 검사비는 원무과에서 추가수납하시면 됩니다.

오늘 검사한 결과 들으러 오시는 건 몇 월 몇 일 몇 시에 예약되어 있으시네요. 그때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고요.

그런데 혹시라도 여기 보시면 있는, 통증이나 출혈, 혈변 등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계속 그렇다 하시면 꼭 다시 병원 오셔야 해요.

검사 당일은 마취약 때문에 어지러울 수 있으니 절대 운전하면 안 되세요. 그리고 30분 이후부터 식사 가능하신데 굶으셨고 내시경도 받으셨으니 가벼운 죽부터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는 자극적인 음식이나 술 담배는 가능한 한 피해 주세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지금이라도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이다.


간호사의 말 중 조직검사에서 내 심장이 쿵 쿵 몇 번이고 내려앉았다.

별 게 없었다면 조직검사를 안 하셨을 텐데, 뭔가 이유가 있으니 조직검사를 한 게 아닌가!


정말로 이 사람이 암이거나 아픈 거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하다.


집을 팔고 차도 팔고 치료와 요양에 집중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할 수 있는 플랜을 머릿속에 대충 떠올려 본다.

그러다 보니 또 울화가 치민다.

어쩌다 내가 이 인간이랑만 엮였다 하면 박복의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건지! 제 부모보다 더한 뒷바라지에 이어 이제 간병까지 해야 하는 건가?

마취에 비몽사몽 하고 있을 남편이 가엽고 짠하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아프지도 마. 갖다 버려버릴 거야."

회복실로 들어긴 비몽사몽인 채 누워있는 남편에게 협박을 했다.


"나 암이면 보험금 나오잖아.

돈으로 스위스 파란 지붕의 집에 보내서 안락사시켜 줘."


하아...........................

전남편인지 미래의 남편이 될지 모르는 이 인간은 안 아프고 안 죽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죽는 것 마저도 돈이 제일 많이 드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미친놈이가! 돈이 썩어 자빠지나! 내가 너를 거기 보내주게!"



그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된다.

그에게 나쁜 병이 있을까 봐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

내 성질 다 받아내느라 생긴 병일까 싶어 모질었던 나를 자책하게 된다.


재혼하고 싶다.

우리 다시 결혼하자고 할까.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는 게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나까지 그가 싸놓은 똥에 쳐발릴 수 없기에 아직 재혼을 하면 안 된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남편에 대한 원망이 단숨에 몸집을 키운다. 전 남편 놈이 미워서 내가 죽겠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더 미칠 노릇이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나답지 않게 밤에 쉬이 잠이 오지 않고, 깊은 잠에 들 수도 없다. 기껏 잔다 싶으면 쫓기고 찢기는 악몽을 꾼다. 밤이 힘이 드니 매사에 울컥해지며 슬프고 짜증스럽고 억울하다.

온 우주가 돕는 행운의 상징이자 캔디도 능가하는 초긍정왕 내가 어쩌다가 이리되었나!


다음 주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괴로울 것 같다. 지금 괴롭고 검사 결과가 괜찮기만 하다면 나는 얼마든지 기꺼이 이 불안과 고통을 감수하겠다. 하지만 진짜로 그의 몸에 이상이 있을까 너무너무 겁이 난다.





어서 빨리 전남편과 재혼하고 싶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꼭! 반드시! 살아야 할 희망과 의지가 되고 싶다. 그가 없으면 나도 도무지 제대로 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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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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