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챙겨주는 시누이
자꾸 시댁 자랑을 해서 참 미안한 일이다.
어쩔 수가 없다. 거짓을 쓸 수도 없지 않나.
나에게는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나보다 11살 많은 시누이 언니가 있다.
우리 부부 둘 다 기념일에 무심한 탓.
<호야, 케이크 기프티콘 보낸다.
퇴근길에 사들고 가서 유유랑 파티해라.>
<유유야,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맛있는 저녁 사 먹어. 축하해.>
어디 달력에다 체크를 해두시는 건지,
매년 당사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챙기는 언니.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 남편이 앉아있던
중에 남편에게 기프티콘 하나가 전송됐다.
남편은 누나에게 온 거라며 "뭐지?" 하며
어리둥절해했다.
나도 "무슨 날인가? 뭐야?" 하며
한참을 머리를 굴려보던 중, 내가 외쳤다.
"아!!!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우리는 함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 다 잊고 있었다고, 너무 웃었다는 우리에게
"정말이야? 너네 왜 그래~
그런 거 안 챙겨버릇하면 나중에 습관 돼~
앞으로 잘 챙기고 그래.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결혼기념일인데 그러면 못 써."
전화를 끊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내년에 또 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내년에 또 언니가 기념일 알람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언니의 '챙김'은 단순한 기억력이 아니다.
어린 동생들이 트러블 없이 서로를 위해가며
아등바등 잘 살아가는 모습이 이쁘고 기특해
<너희 정말 이쁘게 잘 살고 있어.>라는
인정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가 아닐까.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생각해 본다.
연애 때는 그래도 기념일을 챙겼던 것 같은데,
(무슨무슨 데이 이런 건 안 챙겼다.)
결혼하고 나서는 그다지 챙긴 기억이 없다.
왜 그럴까? 사랑이 식어서?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우리의 일상이 그 어떤 이벤트보다
단단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아내를 크게 웃겨주기'를
매일 실천하는 남편이 있고,
'하루에 한 번 집에서 먹는 저녁상을 최선을
다해 예쁘게 차려내는' 아내가 있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벤트가 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365일 내내 서로의 치열한 인생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되고 보니 달력에 찍힌 숫자의 무게가
연애 때보다 가벼워졌다고 해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포옹과 함께
다정하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는 것,
"오늘 하루 어땠어?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서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작은 배려라도 아끼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 부부가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보내는 방법이다.
더 많은 일상의 행복들을 어찌 다 나열할까.
이런 것들이 모여 기념일을 잊고 지나가더라도
누구 하나 서운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둘이 성향이 맞는 것도 있겠지만.
올해도 분명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기념일을 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 80% 이상?
(가족들 생일은 절대 안 잊는 것 보면
그건 또 그것대로 신기하다. 물론 내가 다
기억하고 남편에게 공유하는 쪽이지만.)
그러면 언니가 또 일깨워주겠지?
<카톡> 메시지와 함께.
우리는 또 "아! 맞다!" 무릎을 탁 치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어젖히면 되는 거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랑방식이다.
숫자에 얽매이지 않아도 우리의 온도는
여전히 충분하게 따뜻하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우리의 일상은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만은 안다.
(기념일을 열심히 챙기는 분들이 잘못됐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 없었으면 한다.
그분들만의 삶의 방식이므로 무조건
존중하는 바이다.)
아마도 나이 50살이 되어도 언니의 기억력에
의존하며 기념일을 겨우겨우 챙길 것만 같다.
"언니! 올해도, 내년에도 기프티콘...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