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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쓰 Dec 28. 2016

내가 봤어, 우리 잘 했어

꿈과 사랑을 황홀하게 체험하기, <라라랜드>


#라라랜드 #1 #몸이고생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게 되는 건 나누고 싶을 만큼 황홀한 체험을 한 뒤다. 내가 뉴욕타임즈라면, 신형철이라면, 이동진이었다면! 뮤지컬을 넘어서는 역대급 경험, 황홀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릴 영화, 재알못이라도 당장 재즈를 배우고 싶어질 것, 홈런 타자의 연타석 만루홈런, 뭐 그런 종류의 그럴 듯한 하나의 문장만으로 이 취향을 강력히 강요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영향력이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비루한 나는 이제부터 어떤 글을 찌끄려야 할까 머리를 싸매고 손꾸락을 놀리며 궁뎅이를 혹사시켜야만 할 테다.



#라라랜드 #2 #넛징

다 치워진 테이블에 라라랜드 뿌리기.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회사 사람들이 혹시 대중이 열광하는 영화에 냉소적 시선을 보낼까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옆 작은 포스트잇에 '이것은 재미가 문제가 아니라, 싫어하기 위해서라도 봐야 하는 뉴 클래식이 아닌가 싶다', 뭐 그런 낙서를 끄적여 두었습니다. 영화의 영도 모르는 제가 쓴 글인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제학 용어 중에 넛지(nud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인데,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데 폭력적인 강요보다 부드러운 개입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데서 재정의된 단어입니다. 저는 그 넛지의 힘을 무척 신봉하는 편입니다.



#라라랜드 #3 #내가봤어우리잘했어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려 노력하던 모습들을 전부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잘했어, 내가 봤어, 최선을 다했잖아 그치, 하는 서글픈 인사를 교환하는 모습은 사랑을 했다는 모습이 아니고서야 부를 방법이 없다.

끝내 재회한 그들의 눈빛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아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그들의 사라진 5년을 상상했다. 다시 만난 연인 특유의 조심스러운 다정함, 그 아련한 몸짓들. 종종 있었을 서글플 만큼 체념스러운 다툼, 그 황폐한 이튿날. 좀 더 현실적이 되어버린 헤어짐에 관한 대화, 그 먹먹한 분위기까지. 다시 만나 끝끝내 최선을 다했던 연인들은 배운다. 우리가 이별을 한 게 아니라 이별은 되어버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 일은 온 우주의 지엄한 진리에 진배없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체념할 수 있게 된다. 



#라라랜드 #4 #평론가들왈

#허지웅

... 그러나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별에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되돌리지 못해 있는 힘껏 자책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헤어지는 건 '그냥' 헤어지는 거다. 만약에, 를 여러 번 곱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 는 슬픈 것이다. 당신이 <라라랜드>에 무너져내렸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동진

... 둘은 함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둘보다 하나를 택했고, 사랑보다 꿈을 택했다. 같이 보낸 네 계절은 분명 달콤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은 지났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보면 새드엔딩이지만, 꿈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결국 둘 모두 성공하게 되는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꿈을 향해 달려가다보면 관계는 망실된다고 암시하는 영화다. 선택이란 하나의 성취보다는 다른 하나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읊조리는 영화다. <위플래쉬>에 이어 음악영화를 계속 만들면서도 음악(꿈)과 삶(관계)을 구분 짓고 끝내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그려내는 데미언 채즐의 비관주의는 기이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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