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인미장원 Sep 21. 2023

타임머신을 탄 손님

에필로그. 80년대생 어른이 100시간 소풍 기록

술이 함께하는 소셜 모임을 하고자 할 때, 가장 걱정되는 건 통제 밖의 사람들이다. 사람이 정말 모일까, 모임이 재미있을까 같은 문제는 한참 다음이다. 흉흉한 뉴스가 많은 요즘 시대에 온라인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누군가 소위 꽐라 되어 가게에 대자로 뻗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엎고 갈 단짝 도 없는 그 사람은 누가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처리라고 말하니 다소 우습지만, 모임을 열기 전 혼자 온갖 상상을 다 했다.


걱정되고, 궁금하다.

걱정보다 호기심이 많은 주인장은 결국 모임을 열었다. 긴장되던 모임 첫날, 처음 만난 또래들. 오후 3시에 모인 그들은 밤 12시까지 수다를 떨다 갔다. 계획된 3시간을 훌쩍 넘긴 거의 8시간의 토크였다.


1기 게스트들 중 몇몇은 다시 모임을 찾아주었다. 두 번 세 번 많게는 7번까지 오신 분도 있었다. 그 이후 1년 반 동안 약 160여 명의 80년 대생들이 한적한 주택가의 와인샵에 들렀다. 어설펐던 호스트는 3시간 제한의 스킬도 터득했다.

비공식 번개를 제외하고도 10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모임을 열 수 있었원동력은 재미와 사람이다. 다수의 분들이 매너 있고 유쾌한 분들이었다. 감사하게도 큰 사고도 없었다. 물론 취기와 흥이 오르면 와인잔 한 두 개는 깨질 때도 있다. 앞다투어 함께 깨진 잔을 치우고, 미안하다며 와인도 몇 병 사는 게스트들은 그저 빛이었다.


20대 소셜모임에서 다양한 사건사고가 있음을 전해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모두 같이 나이가 들어 다행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다 보니 별 신기하고 이상한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있었다. 어찌 저런 염치와 뻔뻔함으로 삼사십 평생을 살았을까,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하자면 다소 기니, 궁금한 분은 오프라인에서.


그저 세상엔 직업과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세상 모든 이를 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뿐이다.

80년대생만 모이는 모임이지만, 꼭 와보고 싶다는 90년대생 지인이 깍두기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3시간가량의 모임이 끝날 때쯤, 유일하게 우리와 향유한 시대가 달랐던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서 가장 어려보이는 사람으로 뽑히지 않은 건 살짝 섭섭하지만, 너무 뜻깊고 즐거운 시간들이었어요. 나중에 여기 모이신 분들 만큼 나이가 되었을 때, 저도 여러분 같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다녀온 기분이에요.

평범한 연애, 별거 아닌 고민, 불안, 옛날 그 시절 이야기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도 그렇구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건네며 다른 또래들도 비슷하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금 딱히 문제가 없다면 그게 행복이다

- 배우 조인성 -


이렇게 많은 또래들과 동시대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주인장으로서도 행운이다. 살짝 앞서 가본 이들이 괜찮다고 하니 앞으로 인생도 기대가 된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낀 세대이지만 80년대생들 잘 지내고 있었다.


오늘도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며, 80년대생 소풍 시즌 1을 마친다.


친구야,  행복해.

언젠가 더 재밌는 소풍에서 다시 만나.




* '80년대생 어른이 100시간의 소풍기록'은 2022.1 ~ 2023.6, 일 년 반 동안 160여 명의 80년대생 또래들을 만나고, 약 100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오랜 기간 함께하고 응원해 준 게스트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다들 생업이 바쁘지만 드문 드문 만나요. 와인소풍은 느슨한 연대를 지향합니다.




이전 09화 마흔을 맞이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