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대리가 건넨 숙취 젤리를 먹고 의자에 눕다시피 고개를 젖혔다. 사라지고 싶다. 만드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숙취해소용 젤리는 진심 효과가 1도 없다.
와인을 사랑하지만, 숙취는 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자체 생체실험 결과, 머리가 아프지 않고 적절하게 취할 수 있는 와인의 적정량은 750ml 와인의 절반이다. 피노누아 와인잔으론 2잔 반 정도의 분량인데, 둘이서 한 병을 나눠먹으면 딱 맞는다. 어제밤 혼자 마신포트가 몇 잔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적정량은 훌쩍 넘긴 게 분명하다. 머리가 꽤 아팠고, 그 날 와인샵 창업을 결심했다. 뭐 부터 해야하지? 내가 가진 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입과 시간, 그리고 의지뿐이었다.
이름에 체크해주시고 편하신 곳에 앉아주세요.
직장만 다니다가 갑자기 창업을 하려고 하면 막막하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 역시 나의 상황과 딱 맞는 것을 찾기 어렵고, 창업 카페엔 온갖 푸념 혹은 광고 뿐이다. 긴 호흡으로 A부터 Z까지 알아야 하나의 가게가 완성되고 운영될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백지상태가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많나 보다.
대뜸 일면식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 수익은 어떠십니까, 어디서 납품을 받으십니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라인과 활자로 기웃거리는 것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강연을 신청했다.
강연장엔 나이가 지긋한 분 부터 20대로 보이는 젊은 분 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은 혼자 온 모양새이다. 강연 포스터에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장님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 둘이다. 강연자는 둘 중 머리가 긴 한 명. 둘은 해외에 본사를 둔 유명한 회사를 다니며 가게를 함께 운영한다고 했다. 외국회사라 그런지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면 업무 외 창업을 하는 사이드허슬을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둘 다 술을 좋아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술자리가 좋아 시작했다던 창업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질문 있으신가요?
.. 혹시 물건은 어디서 납품 받아야 하나요?
하지만 내게 지금 필요한 건 힙한 컨셉보다 현실적인 루트였다.
아는 분이 소개시켜주셨어요.
...
자, 다음 질문이요.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바로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답변으로 나왔을 정보는 사실 어려운 건 아니다. 다만 그들도 나름 어렵게 알아낸 걸, 바로 알려주긴 싫었을 것이다. 정보의 크기가 크든 작든, 바로 알아낼 수 없는 정보를노하우라고 부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정보를 듣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친분을 쌓거나,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오후 7시. 딱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숙취도 사라지게 만드는 시간의 마법이 완전히 작용되는 시간이다. 숙취는사라졌고, 이미 나의걸음은 그녀들의 맥주집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