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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랑 Nov 25. 2024

ep08. 생의 첫 10km 마라톤

달리는 이유 3편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뛰면서 달리기의 흥미를 다 잃은 후 다시 뛰게 된 이유는 특별했다. 나와 함께 뛰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코가 아직은 시린 3월 초였고 살면서 처음으로 쉬지 않고 3km를 뛰었다.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참여하게 된 첫 러닝 세션이었는데, 제대로 된 러닝화도 아닌 워킹화였던 아식스 조그를 신고 뛰었다. 6분 정도의 페이스로 청담대교를 뛰었는데 처음 경험해 보는 시티런이 참으로도 낭만 있었다. 압구정로데오 근처 타코집에서 청담대교를 건너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서울의 불빛과 한강은 그야말로 내 발로 뛰지 않으면 구석구석 눈에 담지 않았을지도 모를 풍경들이었다. 또 그날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들과 함께 뛰는 것이었는데 혼자 매일 경쟁하는 달리기를 하다가 옆 사람과 대화하고 뛰다 모르는 사람이 뛰어가면 파이팅을 외치는 문화가 너무나도 낭만 있었다.  


그날 이후 혼자서 한 번 천천히 뛰어봤다. 혼자 뛰는 게 낯설었고 당시 집 근처를 어떻게, 얼마나 뛰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네이버 지도로 대충 거리를 계산해 보고 코스도 탐방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집에서 출발해 강변역으로 나가 펼쳐진 한강을 따라 쭉 달렸다. 홀로 5km를 뛸 때는 첫 시티런만큼 즐겁진 않았다. 혼자 뛰니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고 페이스도 조절하지 못해 숨이 조금이라도 차 오르면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홀로 뛰는 연습을 자주 했다. 그러니 어느새 시간만 되면 자꾸 뛰러 나가고 싶고 같이 뛰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었다.


당시 내 생활 반경에서 같이 뛸 수 있는 곳은 학교 동아리였다. 3월 개강과 함께 동아리는 리크루팅을 진행 중이었고 몇 번의 참석 끝에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러닝 하는 날은 학교에 그냥 운동복 차림으로 갔고 러닝화도 챙겨야 해 짐이 한가득이었다. 한창 상반기 마라톤이 줄줄이 있던 때라 동아리 친구들은 내게 10KM 마라톤을 권유했고 나는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채찍질(?) 끝에 러닝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마라톤을 덥석 접수해 버렸다. 1시간 내로 들어오기를 목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깅을 하면서 준비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일리지가 50 정도 인 채로 도전한 게 참으로 무모했다. 뛰며 만난 아주 소중한 인연인 현희언니가 나를 위해 페이싱을 해 줬는데 언니의 칼 같은 페이싱이 무색하게 나는 몇 번의 업힐을 만나고 바로 퍼져버렸다. 언니가 뛰는 내내 당근만 줬는데 나는 무거운 내 다리에 굴복해 버렸다.


1시간 2분이라는 기록으로 첫 마라톤이 끝났다. 숨이 막히고 발바닥이 아파 억 겹처럼 느껴진 1시간가량의 레이스는 완주라는 달콤함으로 모두 치유됐다. 누군가에겐 고작 10km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렇게 내 첫 마라톤은 끝이 나고 다음은 덥석 하프 마라톤을 신청하게 된다.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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