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이유 4편
첫 10km 마라톤 이후 업힐이 거의 없는 코스라는 서울 레이스를 덜컥 신청했다. 살면서 마라톤 때 처음 뛰어본 업힐의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경복궁만 지나면 청계천 평지를 쭉 달리면 된다는 말을 믿고 하프 마라톤을 덜컥 신청했다. 21km. 살면서 차를 타고도 계산해보지 않은 거리를 뛴다니. 꽤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나는 무슨 뽕에 가득 차 덜컥 신청을 하고 열심히 뛰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은 내가 그 해의 jtbc 풀 마라톤도 신청을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풀 마라톤은 내게는 너무나도 큰 벽이자 당장은 해결하지 못할 숙제로 여겨졌고, 여름 내내 뛰는 내 모습을 보니 러닝을 처음 시작한 해에 너무나도 큰 무리를 하는 것 같아 이내 포기했다. 아무튼 각설하고 다시 뜨거운 여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달리기에 혈안이 돼 아주 중요한 일이 없다면 매일 달리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부족했던 마일리지를 쌓고 내 달리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틈이 나면 달렸다. 당시 알바가 끝이 나면 오후 9시가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알바가 끝나면 배가 고파 야식을 먹곤 했다. 근데 그럴 바에 뛰고 나서 밥 대신 캔맥주를 먹는 게 더 낫겠다며 9시에 알바가 끝난 후 러닝화 끈을 동여 매고 한 여름에도 뜀박질을 이어갔다.
여름철 달리기는 참으로 달다가도 금방 쓰다. 이미 날씨가 더워 흐르는 땀인지 내가 뛰어서 나는 땀인지 헷갈릴 만큼의 땀이 난다. '땀이 흐르네'라고 느낄 새도 없이 이미 폭포수처럼 흐르니 말이다. 여름의 달리기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 끈까지 다 젖을 만큼의 땀을 흘린다. 다 뛰고 나면 얼굴을 휘감는 열기가 참으로 가시지 않는다. 내 얼굴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땀과 함께 내 주변을 오랫동안 감싸며 시원한 물을 마셔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뛸 때도 마찬가지. 목이 금방 타 들어가고 더위에 머리가 어지러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나처럼 멈추려는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면 좀처럼 포기가 습관이 되기 좋은 환경이다. 목표에 미치지 못하게 뛰더라도 이 더운 여름에 뛰러 나온 자체를 높이 사며 스스로와의 타협을 한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여름철 달리기는 달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시 풀마라톤을 준비하던 동아리 친구들과 반포종합운동장(이하 반종)을 매주 갔다. 반종 트랙에서 주로 인터벌 훈련을 했는데 첫 인터벌 훈련 때 과거 피맛 나게 뛰던 시절도 생각나면서 의외로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역시 빨리 뛰고 해치운 다음 누워서 숨 고르는 게 내 체질인가 싶었다. 반종에서 열심히 뛰면 서래마을로 가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거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 캔맥주를 사서 연신 들이켰다. 나만의 여름 나기. 정말 덥고 습한 바깥 생활 후 에어컨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게 행복했다. 때론 잠수교에서 열심히 뛴 후 돌아오는 길에 유일하게 있는 씨유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곤 했다. 끈적한 더위에 노상 맥주는 해본 사람 만이 아는 기분. 머리가 깨질 듯이 시원한 한 모금을 들이켜고 비로소야 내 하루 달리기를 끝맺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