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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 Feb 18. 2024

열아홉의 겨울

내 열아홉의 겨울은 어디로 갔나.

인간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외로움은 다른 감정과는 다르게,

자극이고 충격이자

아픈 상처처럼 오래 남아서

|

늘 공허한 고통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 없이 사는 게 어렵고,

사랑 하나 얻는 게 고되고 힘들어서,

서러워서 나도 모르게

마른 뺨에 눈물이 흐를 때


얼마나 원망스럽고 미워 죽겠어도,


엄마.


엄마라는 사람은

오랫동안 잠식된 우울을 떨쳐내고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게 잔뜩 주려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며칠 몇 달에

뭐가 그리 고통스럽고 외로워서

세상을 등지려 했나.


다들 이렇게 사는 줄만 알았는데,

다른 세계를 사는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내짓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다 보면,


“부럽다”라기 보다,

꼭 저들도 불행을 겪고

이제 행복하기 시작한 것 같아서.


“잘됐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평범하기 위해 등 돌리고

다시 내 세상으로 돌아가서

우울과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 평범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산 것이 아니었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했다.

/

좋았던 추억은 잊혀지고,

안 좋은 기억은 불청객처럼 다가와

방심하고 있던 내 숨통을 조인다.


무수히 많은 눈들 앞에서

굴복한 모습을 보이며,

땅을 짚고 엉엉 운다.


그래도 세상에 살다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설령 사랑이더라도.

사람과의 소중한 연이라 하더라도.


영원하지 않기에

아마도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아픈 열아홉의 기억은 모두 어디로 갔나.

평범한 줄 알았던 내 짧은 한 해가

어디로 갔나.


서툴어 믿지 못하고,

홀로 서야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겠구나

ー생각하고 다짐했던 그날의 기억 빼고

전부 잊혀져서

필름 한 단락이 뚝 끊겨있듯

사라져 없어져버렸다.


아직 그날의 눈은 다 녹지 않았고,

버렸던 담배 불씨가 꺼지지 않았는데.


아직 내 커피는 식지 않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데.

ー 그날, 외로웠나?

그래. 아마 외로웠던 것 같다.


단순한 사랑 그리고 관심.

나는 그런 게 필요했다.


죽지 말라는 말보다,

너를 보아 좋다며

연명에 필요한 연료가 필요했다.


밥 챙겨줄 사람 한 명 없어서

손발이 다 차가워져 있을 때,

따듯한 밥 한 끼 사 먹는 것보다

밥 먹었냐는 물음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일 뿐이었던 나는,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만 늘어났고,


내 세상의 공기는 너무 탁하고 지저분하다며

나는 꼭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며

어지럽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일한 사랑에게

나는 잘못됐으니까.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고,

여전히 어지러우니까.

|

그러니까 내 손을 놓고서

네 세상에서 열심히 잘 살으라 했다.


햇빛이 내리쬐고, 달이 동그랗게 떠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만은 잘 살으라고.


앞으로 당신 힘들지 말으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가 보다고.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날에 찍은 사진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유일한 행복은 잊혀지고,

불행만 남아서 나를 쓰라리게 하길래

|

열아홉의 겨울을 모두 태워 없애버렸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그 해의 기억에

왠지 외로움이 잔뜩 묻어나

그저 허망한 마음만 남았다.


나는 그때 죽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 싶지 않았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답답한 집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와

옥상에서 담배를 연신 태울 때도,

이대로 떨어지면 죽을 거란 걸 알면서도


죽고 싶지 않았다.


그 해의 내게는 죽을 용기조차 없었나 보다.

그렇게 용기가 없는 채 살았어야 했다.


괜히 강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애쓰기 않아도 됐다.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워죽겠어도

담배 연기를 비집고 빛나는 저 가로등의 불빛이

깜빡ー• 깜빡ー• 거렸을 때,

가로등은 내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 이야기했다.


모스부호처럼 깜빡이던 가로등은

아버지를 대신해

내게 미안하다 하는 듯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내 몫까지 사랑을 잔뜩 받아, 덜 외로웠으려나.

우리 가족이 조금은 더 여유로웠으려나.


지금의 기억을 갖고서,

2002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ー 나는 홍익산부인과에 가서

김수진 씨에게

셋째 딸을 낳지 말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의 로또 번호를 알려주며

가정의 화목을 빌 거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의미를 잃고

목적만 앙상하게 남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러려니.

그렇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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